12살의 어린 나이에 라켈 과다라마 씨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다 중상류층 멕시코 가정의 가정부로 집안일을 시작했다. 34년 동안 그녀는 거실 바닥에 걸레질을 하고 접시를 닦고, 빨랫감을 널며 어린애를 돌보았다. 주인은 툭하면 미련하다고 욕하고 성적으로 학대하는 가운데 그녀는 늘 공포와 부끄러움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14세에 막 접어들었을 무렵, 과다라마씨는 70세 된 남자 주인의 성적인 접근을 막아내야만 했다. 이 노인은 부인이 보지 않을 때 자신의 생식기를 신문지로 가린 채 내어보이기도 했으며, 섹스를 하기 위해 부인의 비싼 보석을 주기도 했다. 그녀는 "성적 학대 때문에 여러번 가정부 일을 떠나야만 했다"면서 "나는 애완동물인양, 항상 주인들이 식사를 한 뒤에 다른 접시로 식사를 해야만 했다. 사실 나는 애완동물들이 오히려 더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힘든 가정부 생활을 떠올렸다. 현재 55세의 나이가 된 과다라마 씨는 상처 입은 자아(自我)와 지난 30여년간 뼈빠지게 일했다는 것을 여실히 내보여주는 지친 뼈마디 외에는 지금에 와서 특별히 얻은 것이 없다. 그녀는 연금도 없으며, 어떤 사회보장 혜택도 의료보험도 해당 사항이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멕시코가 가정부 등 가정내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에서 여전히 `암흑의 시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 동안 사회운동가들이 고루한 노동법을 개혁하자고 외쳤고, 비센테 폭스 대통령까지 나서 여성 노동자들의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는데도 진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성 인권운동가인 올해 31세의 로사 팔마 씨는 "그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서 "내 어머니가 50여년을 가정부 일을 하며 일생을 보냈고 나도 그 같은 일을 할 때가 됐을 때 나도 똑같은 차별과 똑같은 노동착취를 당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팔마씨도 지난 8년간의 가정부 생활 대부분을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손'을 뿌리치고 여자 주인의 모욕을 참아내며 보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가정부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가정부는 아무 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중상류층 가정은 물론 심지어 일부 하류층 가정을 한번 들여다보면 최소한 한 명의 가사 노동자는 발견한다. 멕시코법상 최저 취업 연령이 18세다. 그런데도 대다수는 10대 초반의 나이에 24시간 입주 가정부로 들어서는 멕시코인들은 도시 가정에서 일하기 위해 가난한 시골의 인디오 마을을 버린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UNAM)의 훌리아 차베스 카라피아 여성 교육프로그램 담당관은 "그들은 거의 노예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아침부터 자정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고, 성적 학대도 흔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상류층 가정에서 일하는 입주 가정부는 무료 숙식을 받으며 한달에 약 140달러를 받는다. 수도 멕시코시티의 다른 직업에 일하는 직장인들의 평균 임금이 이 금액의 2-3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 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가정 노동자들과 관련한 법규도 매우 모호해 임금이나 다른 혜택, 노동시간, 개인적인 대우 등을 주인이 임의로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돈을 벌려고 일해야하는 가난한 여성들로서는 제공되는 사항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외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노동법은 가정부에 대해 생활할 적절한 장소와 좋은 음식, 휴식을 취할 적당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다라마 씨는 "일부 가정부는 계단 아래 난 공간이나 세탁실 같은 데서 지내고, 좋은 식사라는 것도 땅콩이나 토르티야(옥수수로 만든 멕시코 전통음식), 커피가 전부이며 주 45시간의 노동을 하면 하루 4-6시간 정도의 휴식이 주어질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개선된 점도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지난 87년 결성된 `아타발 공동체'라는 단체는 가정부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인식 제고와 그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연중 가두행진시위도 펼치고 있다. 호세피나 에스트라다수녀가 운영하는 `젊은이를 위한 가정'은 단신으로 멕시코시티로 무작정 상경한 농촌 여성들을 위한 휴식처와 교육,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가정부들의 법적 권리옹호를 위한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높다. 따라서 사회 각계 각층의 더욱 애정어린 손길과 함께 시민운동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 정부 당국의 체계적인 법 규정 마련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