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거부로 이라크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대폭 줄어든 프랑스는 이라크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 원조, 유엔 중심의 전후복구 추진 등을 통해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외교 주도권 회복을 노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 발발 후 국제외교의 최일선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던 프랑스는 최근 이라크 난민 원조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유엔이 중심에 선 전후 이라크복구 및 통치를 주장하면서 다시 국제외교의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다. 도미니크 드 빌팽 외무장관은 지난 27일 영국을 방문해 "유엔이 이라크 재건의중심에 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라크 공격에 대한 프랑스의 반대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 드 빌팽 장관은 이어 다음달초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국을 순방해 이라크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라크 전쟁 발발 전 국제외교 무대를 종횡무진하던 드 빌팽 장관의 '발로 뛰는외교'가 다시 시작되는 셈이다. 프랑스는 유엔에서 이라크에 대한 인도주의 원조 재개를 위한 결의 채택을 제안한 독일을 지지했으며 국내에서는 비정부기구(NGO) 등 민간기구와 함께 이라크 원조,난민수용 등에 관한 논의를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 프랑스는 이라크에 인도주의 원조 1천만유로를 제공키로 했으며 구체적인 제공방법에 대해 유엔, 유럽연합(EU), NGO 등과 협의 중이다. 프랑스는 또 이라크 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국내 시설 점검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 사회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이라크 난민들을 가급적 받아들이지 않고 주변국에 머물게 하려는 것과 비교할 때 프랑스의 적극적인 난민수용움직임이 돋보이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인도주의 원조, 유엔 주도의 이라크 재건 및 통치 등에 프랑스가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이를 통해서만이 이라크 문제에 대해 외교적 발언권을 행사할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29일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유엔이 이라크 전후 처리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협조하자고 강조했다. 전쟁 불참으로 인해 전쟁에 대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프랑스는원조, 전후 처리 과정에 대한 논의를 주도함으로써 국제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보는 것이다. 인도주의 원조는 프랑스의 반전 외교 노선과 부합되며 유엔 중심의 전후 처리는프랑스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 미국이 전후 이라크 복구와 통치를 주도할 경우 프랑스는 이 과정에서 배제될가능성이 높은 반면 유엔이 주도하면 프랑스가 이에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훨씬 커진다. 프랑스는 그동안 평화와 반전 노선으로 얻은 아랍권의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어떤 나라나 기구보다 전후 이라크 평화를 중재할 수 있는 적임 국가라고 자처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후 처리 논의가 본격화되는 대로 이라크에 대한 인도주의 원조, 전후 이라크 통치, 복구 사업 배분 등에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프랑스의 전후 외교 선점 노력은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 당장 효과를발휘하기 어려우며 전쟁의 양상과 속도에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