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남부 국경을 넘어 수도 바그다드까지는 5백60km. 이 길을 미 제3보병사단은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전차를 타고 7일째 북진중이다. 며칠 후면 이 부대 병사들은 바그다드를 사수하려는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와 만나 치열한 시가전을 펼쳐야 한다. 이들과 함께 이동중인 워싱턴포스트(WP)의 윌리엄 브래니진 기자가 전해온 25일자 현지 르포를 소개한다. ----------------------------------------------------------------- 이글거리던 태양이 지평선으로 떨어질 무렵 바그다드 남쪽 80㎞ 지점. 미 제3보병사단 15여단 소속의 7천대 탱크와 험비 차량들이 사막 한가운데 줄지어 서 있다. 차량 대오가 너무 길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임시로 세워진 막사 안에서는 입 속 모래를 게워내기 위해 병사들이 연신 침을 뱉어내고 있다. 제2연대 3대대 앤서니 버틀러 대위(32)는 "제발 잠 좀 잘 수 있게 해달라는 병사들이 많아 오후에는 재정비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 M1 에이브러햄 탱크에서 북쪽을 향해 쏘아대는 포격 소리에 주위는 아수라장 그 자체이지만 병사들은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새우잠을 청한다. 아침이면 텐트 틈새로 날아들어 온 모래가 온 몸을 완전히 뒤덮게 될 것이지만…. 병사들은 '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동안 하루 평균 취침 시간은 1∼2시간뿐. 모래가 씹히는 달걀 프라이와 와플을 저녁 식사로 먹었지만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다. 3대대 군목인 스티브 홈멜 대위(41)가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탱크를 몰 때 제발 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피로가 겹친 병사들이 졸아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자칫 대오에서 벗어나 뒤처지기라도 하면 이들을 노리는 이라크 스나이퍼(저격수)의 공격을 피하기 어렵죠." 지난 23일에는 수송 차량 한 대가 운전병의 졸음으로 이라크군 점령지로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군 7명이 현장에서 사살당하고 5명은 포로로 잡혔다. 그 날 이후부터 부대원들 사이에서는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신체적인 타격을 가하겠다는 위협도 많아졌다. 서로를 긴장시키기 위함이지만 모두들 극도로 민감해진 탓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병장은 "잠을 안 재우면서까지 강행군을 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전술"이라고 항변했다. 이제 장교들의 주 업무는 운전 중 졸았던 병사들을 소집하는 일이 돼 버렸다. 3대대 차량정비 담당 윌리엄 맘 대위는 "수십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래 폭풍 속에서 길을 잃게 되는 차량이 많다"며 "오후 점오 시간에는 실수한 운전병을 집합시켜 호되게 꾸짖는다"고 전했다. 오늘 밤에도 멀리서 붉은 섬광이 번쩍이고 있다. 다가올 치열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들 무표정으로 장비를 챙기고 있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