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군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공략이 본격화되면서 반전 시위의 물결도 거세지고 있다. 개전 나흘째인 23일 유럽과 아시아, 아랍권 등 지구촌 곳곳에서 반전 합창이 울려퍼졌다. 유럽 반전운동의 중심지중 하나인 이탈리아에서는 전쟁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뜻으로 이날 수도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에 기다란 검정 깃발이 내걸렸고 평화를촉구하는 마라톤이 열렸다. 또 시실리와 아비아노의 미군 기지에도 수천명이 모여 기지 입구에 평화를 나타내는 무지개 깃발을 부착하고, 폭격으로 고통받는 이라크 주민들과의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공습경보를 상징하는 사이렌에 맞춰 땅에 쓰러지는 동작을 실행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야당의원은 "이라크 전쟁은 가상의 죽음이 일어나는 비디오게임이 아니며 우리는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군인의 대량 사망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그것이 우리가 이 미친 전쟁을 즉각 중단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최악의 학살무대였던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주민들도 반전행렬에 합류했다. 피카소의 동명작 '게르니카'의 모사품 앞에 모인 게르니카 주민 약 100명은 "더이상의 게르니카는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깃발 아래서 조용히 시위를 벌였다. 호주에서는 이날 수도 캔버라를 비롯, 시드니, 애들레이드 등에서 4만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미국의 전쟁론을 적극 지지한 존 하워드 총리를 성토하고 이라크에 파병된 2천명의 병력의 귀국을 촉구했다. 시드니에서는 3만여명이 "하워드의 전쟁...피의 분노"라는 구호가 적인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으며, 멜버른에서는 100여명의 가족들이 전쟁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위험을 강조하기 위해 "아기들에 대한 폭탄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일본에서는 최대 2천명의 인원이 2차대전 당시의 원폭 희생지인 히로시마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평화행진을 벌였다. 파키스탄 라호르에서는 어린이, 베일을 쓴 여성 등을 포함한 최대 20만여명의대규모 인원이 운집해 반미 구호를 외치며 평화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에서는 오사마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1천여명의 시위대가 자카르트 주재 미국 대사관을 약 3시간 동안 둘러싸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초상화를 태우며 반전의 목소리 를 높였다. 시위에 나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살해하는 것이 이슬람 율법상 적법할 것이라는 주장을 개진하기도 했다. 이슬람교도이 밀집한 자바섬 중부의 페칼롱간에서는 2천여명의 이슬람 학동(學童)들이 시내 광장에 모여 이라크인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했다. 이라크전에 대한 첫 시위가 열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만여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미.영에게 죽음을", "알라-오-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방글라데시에서는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장애인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이들은 붕대를 감은 이라크 어린이의 사진을 들고 수도 다카의 의회 건물까지 평화 행진에 나섰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이슬람교도 500여명이 역사적인 자마 마스지드 사원에서 행진을 시작, 뉴델리 주재 미국 대사관까지 가려했으나 중간에 경찰에 제지됐다.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50여명의 학생들이 3일 연속 하노이주재 미국 대사관 외곽에서 "미국정부, 당신들의 인간성은 어디로 갔는가?", "부시와 블레어는 학살을 원했다" 등의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태국 방콕의 이슬람교도들은 미국 및 동맹국들의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요구했다. 630만 태국 인구의 5%를 차지하는 이들 이슬람인들은 반전시위에도 적극적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시위대 700여명이 미군에서 영공을 개방한 정부의 방침에항의하는 집회를 열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가 유리창을 깨고 돌을 던지는 등 경찰에 맞서 최루가스로 해산됐다고 터키 아나톨리아 통신이 보도했다. 또 이라크 접경 지대인 터키 남동부 투사야빈에서는 주민들이 남부 항구로 가기위해 기지를 떠나는 미군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고향에)돌아가라"고 외쳤다. 이집트와 요르단에서는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해 대이라크 전쟁 을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위치한 아인참스대학 학생 4천여명과 북부 카프르 엘 셰이크대학 2천여명, 북동부 만수라대학 학생 1만여명은 이날 각각 캠퍼스에서 반전집회를 가졌다. 한편 이집트 경찰은 지난 사흘간 반전, 반미시위 참가자 중 800여명을 연행한것으로 전해졌다. 요르단에서는 4천여명의 알-후세인 대학생들이 지난 21일 경찰과 친이라크 시위대들간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한 남부 마안에서 시위를 갖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이라크에 대해 "우리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며 이라크에 대한 유대를 표명했다. 이들은 "요르단에서 미군 병력을 몰아내라" "미국 대사를 추방하라" "B-52 폭격기에 대해 요르단 영공을 폐쇄하라" 등을 외치며 미국과 영국에 대해서도 노골적인반감을 드러냈다. 미 해군 제5함대의 모항(母港)인 바레인에서는 미국 대사관 주변에 시위대들이집결해 경찰과 대치 끝에 최루가스과 고무탄을 사용한 경찰의 진압에 30분만에 해산했다. 시위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은 자동차 타이어를 태우거나 시위 진압 경찰에 돌을던졌으며 시위의 표적이 된 바레인 주재 미.영 대사관은 이날 대외 업무를 중단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전날 시위학생 1명의 사망으로 시위가 더욱 격화됐다. 이날 3천여명의 대학생이 수도 하르툼의 미 대사관 주변에 쏟아져나와 진압경찰과 충돌했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 1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처럼 아랍권의 반전 시위가 격화되고 반정부 시위의 조짐을 보임에 따라 일부지도자들은 이라크 국민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고 이번 전쟁이 장기전으로 변모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되자 "우리는 시위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우리가 전력을 다해 전쟁을 피하려 한 것을 알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마흐메드 마헤르 이집트 외무장관은 "우리는 이 중대한 시기에 진심으로 이라크국민 뒤에 있다"며 "이집트는 이라크 국민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격지 않도록보호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형제 이라크 국민의 시련에 대한 고통과 고뇌"를 함께 느낀다고 말했다. 시리아 집권당 연합체인 국민진보전선(NPF)는 미국과 영국에 "야만적인 침공"을끝내라고 촉구했다. 한편 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등에 참전해 무공을 세운 미국의 퇴역군인 수백명도 이날 수도 워싱턴에 모여 평화 행진을 벌였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78세의 한 시위 참가자는 "우리는 전쟁의 공포와 고통, 악취를 안다"면서 이라크전을 반대했다. (런던.카이로.워싱턴.로마.마나마.이스탄불.하르툼.게르니카.카불 AP.AFP.dpa=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