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이 프랑스,독일 등 맹방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공격의 고삐를 조이는 가운데 개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난 15일에도 지구촌 곳곳에 수백만명이 집결, 주말 반전(反戰)시위를 벌였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전론 국가들에서도 수 주 전부터 적잖은 반전 시위대들이 '인간 방패'역을 자청, 바그다드로 향하는 등 온 몸으로 전쟁을 막아보려는 이들의 뜨거운 반전 결의는 급기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 주전론자들의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리는 역할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세계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돼 온 반전운동은 프랑스와 러시아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반전 입장을 강화하는 한편 부시 대통령의 확실한 동지였던 블레어 영국 총리까지도 한 때 '사찰 연장안' 수용을 밝히는 등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반전 시위 등 반전 운동 봇물 지난 15일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워싱턴에서는 수 천명이 모여 "석유위한 전쟁 반대"를 외치며 백악관으로 행진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14일 반전 시위대가 시내 주요 교차로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여 극심한 교통체증을 초래, 80여명이 체포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오스카상 수상 여배우 제시카 랭을 비롯한 일단의 할리우드 스타들도 지난 10일 전세계에 걸쳐 100만명 이상이 서명한 반전(反戰) 탄원서를 미국 유엔 대표부에 전달했다.

영국 런던에서도 이날 2천명 가량이 반전 행진을 벌였으며 요크와 리즈 등 북부도시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정부가 이라크전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반전의 선봉에 선 프랑스에서는 파리에서만 5만5천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을 비롯해 마르세유, 보르도 등 100개 가까운 도시에서 총 15만명의 인원이 반전집회에 참여했다. 반면 이라크가 자행한 쿠르드족 학살 15주년을 맞아 쿠르드족 20여명은 런던 주재 프랑스 대사관 앞에 모여 이라크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에 항의했다.

독일 베를린에서도 촛불을 든 10만여명의 시위대가 서로 손을 잡고 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약 35㎞의 인간띠를 이었으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천400명의 시위대가 미 공군기지의 주요 입구를 수 시간동안 봉쇄했다.

반전 외교의 또 다른 축인 러시아에도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관 앞에 공산당원과 국제노동자당원 등 1천여명이 집결, 전쟁 반대를 외쳐댔다.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에서는 이날 40만명이 거리에 운집해 반전을 외쳤으며 주요 노조인 CGIL은 이라크 전쟁 발발시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주최측 추산 100만여명의 인원이 반전시위에 나서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총리의 친미 정책을 성토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도 50만명이 모여 전쟁반대를 외쳤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3천여명이 집결, 미국과 영국을 "전쟁 광분자"로 비난하며 전쟁 계획 중단을 촉구했다. 미국이 군장비를 하역한 터키의 항구 도시 이스켄데룬에서는 7천500명이 모여 '양키 고 홈' 구호 등을 외치며 반전 시위를 벌였고,키프로스의 그리스계 주민 3천여명도 미국 대사관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시위 현장에는 피카소의 반전 주장 그림인 '게르니카'와 '유럽연합(EU), 미국, 유엔의 살인자들을 집으로'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이밖에 부큐레시티, 코펜하겐에서도 수천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캐나다에서는 몬트리올 15만명, 토론토 8만명 등 수십만명이 반전시위에 참석했으며 멕시코, 아르헨티나, 과테말라 등 중남미 곳곳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집권 바트당 주관으로 열린 반미 시위에는 어른과 어린이들까지 사담 후세인 대통령 초상화를 들고 참석했다. 예멘에서는 수도 사나를 비롯한 전국에서 이날 50만명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이 반전시위를 벌였다.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에서도 4천여 주민들이 거리에 집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라크의 국기들을 흔들며 이라크 지지 시위를 벌였으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도 시인과 작가, 변호사, 학자, 공무원, 기업가 등 지식인(여성 포함) 약200명이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발표했다.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서는 반전단체 회원 300여명이 모여 교내 행진을 하며 반전 시위를 벌이는 등 이집트에서는 거의 매일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상업 중심가에서는 약 1만명이 시위에 참석했으며 태국에서도 1천명이 방콕의 유엔 사무소 밖에 모여 전쟁 반대 주장을 외쳤다.

서울에서도 15일 저녁 2천명이 종이 비둘기를 저녁 하늘에 던져 올리며 반전 주장을 펼쳤다. 민주당 김근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35명은 13일 성명에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사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라는 국제 여론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영국도 사찰연장안 수용 이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반전 여론이 확산되고 국내여론도 악화되자 블레어총리도 지난 2월 사찰연장안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유엔 결의 없이 이라크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미국 입장에 동조해 온 블레어 총리는 "무기사찰단은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며 이라크 문제를 앞으로 유엔 합의를 통해 해결해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이라크전을 추진해 온 미국으로서는 아찔한 순간이었으나 블레어총리가 이라크가 수용하기 어려운 '전쟁회피 6개 조건'을 제시함에 따라 사태는 새로운 양상으로전개됐다. 전쟁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였다.

◆아랍연맹 전쟁반대 결의 아랍연맹 22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2월16일 카이로 연맹 본부에서 긴급 회동, "이라크 공격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으로 고통 겪는 중동지역에 위험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결의문을 채택했다.

반면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적으로 확산 일로에 있는 전쟁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한 공세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재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17일 대국민담화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48시간의 최후 통첩을 제시했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기자 duckhw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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