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목표로 주도하고 있는 이번 전쟁은 1991년 걸프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교전지역이 걸프 지역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쟁의 명분이나 발발과정,전쟁외교, 동맹국들의 참여, 양측의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10여년의 세월 만큼이나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교전당사자인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권좌에 그대로 남아있는데다 미국 쪽에서도 조지 H.부시 대통령이 아들인 조지 W.부시 대통령에게 통수권을 넘겼을 뿐딕 체니 부통령(당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당시 합참의장)을 위시한 걸프전의 영웅들은 이번에도 고스란히 미국 전쟁 지도부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쟁은 미국이 미완의 전쟁으로 종결한 1차 걸프전의 연장선상에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리턴매치'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대(對)테러전쟁 차원에서, 또는 대량살상무기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에 대한 응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전쟁은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이 일방주의로 강행하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걸프전 당시처럼 대규모 다국적 군이 편성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 명분= 91년 1월17일 `사막의 폭풍'이라는 작전명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그해 2월26일 이라크가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받아들이고 미국이 이틀후 종전을 선언함으로써 45일만에 끝났다. 무엇보다 걸프전은 90년 8월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라는 절대적인 명분이 있었다. 당시 후세인은 이란과의 8년 전쟁에서 구축한 100만의 군사력으로 아랍 패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쿠웨이트를 침공, 19번째 속주로 편입시킨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침공할 기회를 엿보는 상황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위험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몰고올 수 있는 전세계를 향한 위협이지만 실제 목표는 후세인 정권의 전복이다. 하지만 이라크의 석유이권을 챙기고 중동질서를 입맛대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패권 야욕이 깔려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특히 유엔 무기사찰단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사실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으로선 직접적인 명분을 손에 쥐지 못한 채 개전에 들어가는 셈이다. ◇병력과 전황=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패권주의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영국,프랑스 등 서방과 일부 아랍.아시아권 등 세계 33개국은 다국적군 68만명을 편성,페르시아만 일원에 집결시켰다. 이라크는 정규군 54만명, 예비군 50만명, 민병대 85만명, 정예 공화국 수비대 15만명으로 다국적군에 맞섰다. 다국적군은 개전 이후 한달간 10만여회에 걸친 공중폭격을 단행, 이라크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2월24일부터 전면 지상전을 전개,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격퇴하면서 이라크군 42개 사단 중 41개 사단을 무력화시켰다. 한국은 전쟁 지원금 5억달러를 분담하고 군의료진 200명, 수송기 5대를 파견했다. 전쟁과정에서 다국적군 전사자는 125명, 이라크측은 사상자를 집계하기 힘들고 포로는 5만명 선으로 집계됐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동원하는 병력은 쿠웨이트에 배치한 총 25만명 수준이고 영국군이 4만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밀유도(스마트) 폭탄과 디지털 통신 네트워크, 첨단 개인전 장비 등이 처음으로 선보여 단순한 병력 비교만으로는 전쟁의 질을 파악하기 힘들다. 이라크 군은 걸프전 당시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42만명의 병력으로 맞서고 있으며 생화학무기 보유 여부가 전력의 절대적 변수다. ◇전쟁외교= 걸프전 발발 직전 유엔은 모두 13개의 결의를 통과시켜 힘을 실었다.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한 안보리 결의(660호)부터 이라크 무역제재 결의(661호),무력 사용 결의(687호)까지 유엔의 전쟁 승인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국적군이 유엔의 우산 아래 집결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가는 길에서 미국은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정면에서 전쟁을 반대했으며 러시아도 뒤질세라 반대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미국의 명분은 빛을 잃었다. ◇전쟁의 의미= 걸프전은 냉전 체제 붕괴이후의 첫 전쟁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 걸프전은 유엔의 평화유지 기능에 관심을 증폭시켰다. 유엔 결의를 바탕으로 전세계 28개국에 전비의 60% 이상(545억달러)이 분담됐다. CNN을 통해 처음으로 미사일 발사 장면 등 전황이 생중계된 최초의 전쟁이기도 했다. 반면 이번 이라크전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시험대에 올리는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발발한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달리 국제사회의 지지를 따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옥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