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중국의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후진타오(胡錦濤)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의 뒤를 잇는 중국의 제4세대 지도자다. 후진타오 신임 국가주석은 1992년부터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고 1998년 이후 국가부주석을 역임해 왔지만 외부 세계는 물론 중국 내국인들에게 조차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남아있다. 이는 그 동안 권력 후계자로 부상했다 몰락한 린뱌오(林彪)나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의 부침을 옆에서 지켜본 후진타오가 중도 하차를 우려해 자신을철저히 감춰왔기 때문. 롱촨(龍川) 후씨 44대인 후진타오는 지난 1942년12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은 안후이(安徽)성 지시(績溪)현이며 어린 시절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자랐다. 그는 1959년 중국의 명문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과에 입학, 6년 뒤인 1965년 졸업하고 1968년까지 정치 지도원으로 재직했으며 1966년 이후 10년 간 계속된 문화(文化)대혁명에 참가했다. 그는 간쑤(甘肅)성 건설위원으로 일하던중 간쑤성의 최고 권력자 쑹핑(宋平) 당서기의 눈에 들어 간쑤성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성위원회 서기 등으로 발탁되며 승진 가도를 달리게 됐다. 젊은 간부를 물색하던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는 1982년 쑹핑의 추천을 받은 후진타오를 공청단 지도자로 발탁했으나 그는 태자당과의 갈등으로 구이저우(貴州)성 당서기로 밀려나기도 했다. 쑹핑은 당 원로들에게 후진타오를 제4세대 후계자로 만들자고 추천했으며 덩샤오핑은 1992년 제14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를 장쩌민 이후의 지도자로 선정하고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했다. 후진타오는 1998년3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국가 부주석직에 오른 데 이어 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직도 차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장쩌민이후'의 지위를 굳혔다. 총명함과 함께 온화하고 겸손한 후진타오는 장쩌민의 '핵심'적 지위를 위협하지 않으려고 정치 행사 등에서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여 처신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후진타오는 학창 시절부터 노래와 춤, 스포츠에 심취해온 감성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가족 관계는 칭화대 동문인 부인 류융칭(劉永淸) 여사 외에 자녀 관계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홍콩=연합뉴스) 권영석 특파원 ysk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