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월가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는 '지정학적 위험(Geo-political Risk)'이다. 빗나간 주가 예측을 회피하려는 증권회사뿐 아니다. 금융당국도 경제부진의 원인을 정책 잘못보다 지정학적 위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작년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조정위원회에서 "높아진 지정학적 위험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만들고 있다"며 이 단어를 처음 쓴 이래 경제부진을 설명하는 단골이 되었다.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 나선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도 현 경제상황을 지정학적 위험으로 얼버무렸고,최근에 발표된 베이지북(FRB의 경제보고서)도 시종일관 이 단어를 쓰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의 크기는 측정할 수 없을까. 최근 들어 이를 계량화하는 방법이 조금씩 개발되고 있다. 위험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해 투자의 판단근거로 삼으려는 시도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지정학적 리스크 인덱스(Geo-Index)'.전 국가안전보장위원회 고문이었던 브렌스 스코크로프트가 이끄는 컨설팅회사가 지난 달 만들어낸 이 인덱스는 이코노미스트지가 사용하는 'R-word 인덱스'를 본땄다. R-word 인덱스는 미국의 양대 신문 격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서 '경기침체(Recession)'란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몇건 나왔는지를 살펴보는 지표.지난 20년 간 분기별로 따져본 결과 경기동행지수로서의 구실을 훌륭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증권사들도 투자지표로 삼고 있다. 'Geo-인덱스'를 역산해 보면 지난 여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긴장이 고조될 때 30선이던 지수는 최근 이라크전쟁 위기가 높아지면서 120으로 올라갔다. 그때보다 위험정도가 4배 커졌다는 구체적인 계산이 나온다. 씨티그룹내 투자은행인 살로먼스미스바니도 2월부터 지정학적 위험을 계량화하는 인덱스를 만들었다. 이 지수에는 원유가격, 금값, 달러화, 미국채(2년물)이자율, 군수산업 주가추이 등이 포함돼 있다. 은행측은 고객들이 지정학적 위험을 측정한 뒤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주가하락을 막을 수는 없어도 정확한 분석을 통해 투자 손실은 줄일 수 있다는 '투자의 과학화'인 셈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