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요즘 핫 이슈는 이라크 사태와 북한 핵문제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몰고 올 파장과 충격에 대한 걱정,숨막히게 돌아가는 이라크 관련 국제정세와 북한 소식이 없다면 무엇으로 지면을 메우고 방송을 할 지 궁금할 정도다. 엊그제 아침에도 TV 시사토론과 각종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이들 소식이 단골 메뉴가 됐다. 일본언론의 이라크,북한 뉴스'잔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납치자 피해와 핵개발 문제가 표면화되고,미국과 이라크의 대립이 평행선을 달린 이래 계속되고 있다. 보도 내용과 수위를 보면 일본이 이라크,북한과의 교전 당사국이자 가장 위협에 직면한 나라로 착각될 정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비롯한 고위각료와 정치인들도 입만 열면 이 문제를 거론한다. 국제정세 변화에 귀를 닫았던 일본인들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며 저절로 '위기'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같은 시각 동해바다를 건너오는 한국소식은 어딘가 엇박자다. 시련을 많이 겪고,위기에 강한 체질을 갖춰서인지는 몰라도 이라크,북한 문제는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개혁과 변화가 동반한 어쩔 수 없는 진통임을 이해한다 치더라도,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대립·분열에 가까운 단어만 자주 눈에 띄고,국가적 에너지를 극대화할 조화와 타협은 뒷전에 있는 인상이다. 유가와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뜀박질하고,한국을 보는 국제금융시장의 눈이 매서워져도 밖에 비쳐진 한국은 '마이 웨이'다. "일본측 파트너들의 표정과 말투가 전 같지 않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 직후에는 다이헨데쓰네(안됐군요)를 연발해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지금은 북한 핵문제를 물어 보는 사람이 많아지더라고요" 한국계의 한 금융회사 지점장이 들려 준 말에는 일본측 파트너들이 여차하면 돈줄을 죄거나 얼굴을 돌릴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짙게 배어있다. 경제적 환부를 방치한 일본이 위기불감증 환자로 놀림받았지만,2003년 3월의 한국은 더 심각한 위기불감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