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비상임 이사국이 되지나 말걸". 유엔 안보리의 제2차 이라크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멕시코 정부는 몹시 괴로운표정이다. 코카콜라 멕시코사장 출신인 비센테 폭스 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돈독한 대미관계를 유지해 온 사실을 감안하면 찬성표를 던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는 `비동맹'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해 온 멕시코의 전통 외교노선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국내여론을 거역하는 셈이 된다. 미국은 2차 결의안의 의결을 위해 5개 상임이사국과 임기 2년의 10개 비상임 이사국을 상대로 로비 및 정보수집 활동을 강화하는 등 총력전을 펴고 있으나 프랑스와 러시아가 이미 반대를 굳혔고, 일부 비상임 이사국들도 이에 동조하는 기색이다. 안보리 운영규정상 결의안 통과는 15개 이사국중 9개 이사국의 찬성을 필요로한다. 그러나 상임 이사국간의 의사분열과 반전론의 확산에 따른 비상임 이사국들의눈치보기로 통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멕시코의 좌고우면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스페인의 아스나르 총리까지 동원해 멕시코 정부를 설득했으나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안토니오 가르사 주멕시코 미국대사는 지난주 친구간의 우정을 예로 들며 "역경에 처한 친구를 돕지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며 멕시코 정부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미국이 멕시코에 매달리는 이유는 멕시코가 지지의사를 표시하면 중남미의 다른비상임 이사국인 칠레 역시 미국쪽으로 돌아서면서 결의안 통과에 대비한 의결정족수를 무난히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다. 멕시코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제 출범이후 대미 교역량이 급증하면서 전체 수출입의 90% 가량을 미국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멕시코가 불경기에접어든 것도 미국의 내수시장이 좀처럼 활성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국에 멕시코가 반대표를 던졌을 경우 미국은 틀림없이 경제수단을 동원한 보복을 해올 것으로 정부나 기업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폭스 멕시코대통령간의 `우정'은 말이 우정이지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 앞에서는 맥도 못출 것이라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멕시코 정부의 선택은 자명해질 수 밖에 없지만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국내여론과 비동맹과 내정 불간섭을 원칙으로 한 멕시코 정부의 전통적인 외교노선이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한 주요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멕시코 국민의 90%는 미국의이라크 침공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유엔의 대이라크 무기사찰 연장과 무장해제를 통해 이라크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멕시코 출신의 중남미 저명 소설가인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멕시코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미국대사는 참견만 할 줄 아는 애송이 외교관"이라며 "세계평화라는 전제앞에 멕시코 정부는 미국의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폭스 대통령은 최근 "결의안 내용이 일부 수정된다면 미국의 뜻에 따를 수 있다"고 했으나 미국은 일언반구의 응답도 없다. 결의안 표결 날짜는 다가오지만 멕시코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형편이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특파원 bigpen@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