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스페인은 24일 이라크가 평화적무장해제의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선언하는 내용의 새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군사행동을 명시한 조항은 포함하지 않았으나 이라크에 대해 '심각한 결과(serious consequences)'를 경고한 지난해 11월의 유엔 결의 1441호를 상기함으로써 사실상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조항을 포함했다. 이 결의안은 또한 이라크에 대한 최후통첩이나 무장해제 시한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영국이 이 결의안 표결시기로 제시한 다음달 중순이 외교적 해결노력의 시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력사용 대신 사찰의 연장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프랑스, 러시아, 독일은 미국, 영국, 스페인의 결의안에 맞서 이라크의 평화적 무장해제를 목표로 한 자체 방안을 메모 형식으로 만들어 안보리에 배포했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안보리 이사국 대부분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선뜻 지지하지 않고 있어 새 결의안이 통과되기까지는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새 결의안 내용=제레미 그린스톡 유엔주재 영국대사가 3개국을 대표해 안보리에 제출한 결의안은 "이라크는 안보리 결의 1441호에 의해 부여된 최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로운 결정사항으로는 이 조항이 유일하며 나머지 조항들은 대부분 유엔 결의 1441호를 비롯한 과거의 유엔 결의들을 상기하는 내용으로이뤄져 있다. 그러나 새 결의안이 상기한 과거 유엔 결의 조항들 가운데는 "이라크가 무장해제 의무에 관해 `심각한 위반(material breach)'을 자행해왔고 지금도 그렇다"거나"대량파괴무기 실태보고서에 거짓된 진술과 누락이 있었다"는 언급이 포함돼 있다. 또 "유엔 결의 1441호에서 안보리는 이라크에 대해 계속된 의무위반에 따라 심각한 결과에 직면한다는 점을 거듭 경고해왔다"고 상기해 무력사용의 완곡한 표현으로 해석된 `심각한 결과'라는 구절을 다시 사용했다. 따라서 결의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미국과 영국은 "과거 안보리의 거듭된 경고와 무력사용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평화적 무장해제의 기회를 끝내 스스로 저버렸다"는 논리로 군사행동을 정당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결의안이 제출되기 직전 "이라크는 지난해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 결의의 요구대로 무장해제를 하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이 기구(유엔 안보리)가 의미있는 조직이 될 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佛ㆍ러ㆍ獨 대응=미국과 영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에 반대해온 프랑스와 러시아, 독일은 사찰단의 강화와 사찰기간의 연장으로 기존의 유엔 결의 아래에서 이라크의 평화적 무장해제를 시도할 것을 촉구하는 자체안을 안보리에 제시했다. 3국의 제안문건은 "관련 유엔 결의에 의해 완전하고도 효율적으로 이라크를 무장해제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절대적 과제"라고 지적하고 "군사적 선택방안은 최후의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3국은 이를 위해 인원, 장비의 보강 등을 통한 사찰활동의 강화를 도모하는 한편 사찰단이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별로 활동계획을 마련하고 이 계획이 채택된 날로부터 120일 이내에 유엔에 결과를 보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식 결의안 초안이 아닌 메모 형식으로 안보리에 회람된 이 안에 대해 독일을방문중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라크의 무장해제 시한을 각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별로 설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한 시라크 대통령은 "우리는 기존의 논리, 즉 평화의 논리를 변경해 전쟁의 논리로 갈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슈뢰더 총리도 "우리는 이라크의 평화적 무장해제를 달성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의견"이라고 말했다. ▲향후 일정=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새 결의안의 유엔 표결에 관해 "우리는결정을 요청하기 전에 2주 남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 다음달 중순 표결을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 백악관도 3월 중순 표결에 동의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군사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백악관이 이라크 침공을 더 연기하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3월 중순으로 상정된 시한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더 늦어지면 이라크 전쟁은 폭염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있어 미군에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 오는 3월1일은 한스 블릭스 유엔 감시ㆍ검증ㆍ사찰위원회(UNMOVIC) 위원장이 유엔 결의에 명시된 사정한도를 초과한 미사일의 전량파기 착수 시한으로 설정된 날이다. 이라크가 유엔 사찰단의 불법 미사일 파기 지시를 이행할지 여부는 새 결의안에대한 안보리 여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월 7일에는 블릭스 위원장이 안보리에 사찰 결과를 다시 보고하며 11일에는 핵무기 사찰을 책임지고 있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역시 안보리에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새 결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진다면 두 사찰책임자의 안보리 보고가 끝난 직후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