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대예배일인 21일 정오, 바그다드 시내이븐 알-가잘리에 지구의 옴므 알 마아리크(모든 전투의 어머니) 사원. 아직 공사중인 `사담 후세인 모스크'와 `후세인 케비라(大후세인) 모스크'를 제외하면 현존하는이라크 최대 규모의 사원이다. 2001년에 완공된 옴므 알 마아리크 사원은 대리석 외벽에 청자색 타일로 장식한 미나렛(첨탑)이 인공 호수를 배경으로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본관 주변 건물 외벽과 첨탑 곳곳에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썼다는 코란 구절이 새겨져 있다. 또 사원 경내 박물관에는 후세인 대통령의 피로 필사시켰다는 코란이 보관돼 있으나 이날은 전시실을 개방하지 않았다. 이라크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 기자들은 공보부 프레스 센터의 권유(?)로 한번쯤은 이 사원을 찾게된다. 1천여명의 신도들이 본관 대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예배에는 신도들 뿐 아니라 이라크 국영 TV와 외신 기자들도 수십명이 몰려들어이맘(예배 안내자)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있을지 모를 이맘의 폭발성 대미발언과 신도들의 반응에 관심이 쏠렸지만 예배는 시종일관 엄숙하게 진행됐다. 코란 독경을 마친 이맘은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을 격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미국 정부는 정의도 자비심도 없으며 그들이 침공해올 경우 "알라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보호해줄 것"이라는 취지다. 외신에 종종 보도되는 흥분한 신도들의 강경 반미 구호나 시위는 없었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신도들은 한결같이 무표정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예배를마친 중년의 남자 신자에게 무슨 내용을 기도에 담았냐고 물었다. "나는 죽어도 좋으니 자식들을 보호해달라고 알라께 빌었다"고 대답했다. ◆ 반전 평화시위 현장=이라크에 입국한 각국 반전평화 운동원들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라크에 입국한 반전 평화단체는 이라크반전평화팀(Iraq Peace Team)과 인간방패로 크게 구별된다.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 운동원인 한상진(38)씨와 허혜경(28)씨도 바그다드에 입국, 한국팀 운동원 본진의 바그다드 합류를 위한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 9명과 스페인, 모로코 각각 1명 등 11명의 인간방패(Human Shields) 자원자들이 21일 밤 다그다드 시내 사피르 호텔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미국과유럽 출신 운동원들이 주축이 된 인간방패 대원들과 이라크평화팀 운동원들은 그동안 레이스와 가두시위, 티그리스강 교각 시위 등 상징적 평화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날 밤부터 이들은 주요 정수장과 발전시설에 1명씩 교대로 배치돼 첫인간방패 활동에 들어갔다. 현직 교사인 스웨덴 출신 문화활동팀장 잉그리드 테르네르트(여.35)는 그동안의활동이 행사위주의 준비작업이었다면 이날은 인간방패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인간방패를 자원한 운동원은 200명이며 앞으로 500명이 추가로 입국해 합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철야 인간방패 임무에 나서는 이탈리아 출신 암볼리나(28)는 바그다드에서 이틀간 활동한뒤 다른 곳으로 배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슬리핑백과 랜턴, 파라솔까지 갖춘 그의 표정에 비장감이 흘렀다. 이날 오전에는 터키 출신 인간방패 자원자들이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피신하지 않고 이라크인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티그리스강변 아부 나와스가(街)를 따라 수십개소의 마스끄푸(잉어훈제요리)레스토랑들이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손님을 맞았다. 휴일이라 레스토랑 마다 어른 팔뚝만한 잉어요리를 즐기는 손님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1960년대에 개업했다는 허름한 잉어요리 식당에는 40년전의 티그리스강 풍경과손님들로 만원을 이룬 옛날 식당 사진이 벽에 걸려있었다. 알 가잘르라고 이름을 밝힌 한 마스끄푸 식당 주인은 휴일 저녁인데도 손님이 별로 많지 않다며 1970-80년대가 전성기였다고 말했다. 그때는 꾸리(한국인)들도 많이 식당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금요일인 탓도 있지만 번화가인 만수르가의 밤 풍경도 왠지 쓸슬하기만 했다.도로는 왕복 8차선으로 넉넉하지만 차량 통행은 비교적 한산했다. 봄에 찾아오는 사막 모래바람인 `캄신'이 시작됐는지, 밤 하늘이 뿌옇게 가려 있다. 식당에서 만난한 청년은 캄신이 다음주부터 석달간 계속 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막 계절풍이 불면 미국의 공습이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바그다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전쟁에 대한 공포는 없다고 말한다. 전쟁은 반드시 날 것이라고 믿지만 결연하게 맞서겠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이 많다. 프레스센터 공식 가이드인 우다이 압달아술(24)은 5년전 바그다드 농대를 졸업하고 무급 가이드로 일한다. 정부에서 주는 월급이 거의 없고 외국 기자들에게 영어통역과 안내를 해주고 받는 팁이 주소득이다. 그는 다음달 군에 입대해 18개월 간복무할 예정이다. 지난해 결혼했으나 아이는 없으며 돈벌이가 되면 뭐든지 해왔다고말했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입대후 전쟁이 벌어지면 일개 군인으로싸우겠지만 그전에 나면 정부 지시대로 민간인 안전 대피업무를 맡게 될 것 같다고대답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내 목숨은 상관없지만 부모님과 가족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좋아지고 평화가오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입을 늘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프레스 센터에 인접한 만수르 호텔 직원 아미르(가명)는 일찍 결혼해 3남 4녀를두고 있다. 전쟁이 날것 같냐는 질문에 "100% 장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가유엔안보리 결의를 완전 수용해도 "텍사스 오일 마피아"들이 이라크를 그냥 놔두지않을 것이라고 했다. 해외로 피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부럽지 않냐고 물었더니 "떠나는 사람들이 부럽거나 밉다는 생각은 없다. 나는 이곳에 끝까지 남아 알라께 목숨을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서는 최근 몇달새 이런저런 이유로 인접국인 시리아와 요르단으로 각각 50만명과 60만명이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그다드=연합뉴스) 정광훈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