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3일 이라크의 유엔군축회의(CD) 의장직 수임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이라크가 이를 의사규칙 변경을 위한 일방적인 압력행사라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0일 10주간 일정으로 제네바에서 개막된 유엔군축회의의 3월중순으로 예정된 이라크의 군축회의 의장직 수임 문제를 놓고 적지 않은 난항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래더메이커 미국무부 군비통제 담당 차관보는 이날 군축회의 본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라크의 군축회의 의장직 수임은 미국에 수용불가능한 것이며 군축회의의 모든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래더메이커 차관보는 "이라크의 의장직 수임은 군축회의가 지난 6년간 무기력한 활동을 보여준 것 보다도 더욱 심각한 정도로 군축회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조연설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12년간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라크가 의장직을 맡는다는 것은 군축회의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우리는 이라크가 의장직을 맡는 사태가 빚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검토하고 있는 방안중에 군축회의에서 퇴장하는 것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등 서방진영은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당사국은 의장직을 맡지 못하도록 의사규칙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그러나 북한은 현재까지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유엔군축회의 의장직을 맡는 것에 대해서는 이라크와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올해 유엔군축회의 의장직은 영문 알파벳 순서에 의해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가 한달씩 맡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란이 최근 국제회의 일정이 겹친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내세워 의장직 포기의사를 표시함으로서 이라크가 오는 3월17일부터 의장직을 자동 승계하도록 되어 있다. 이라크의 의장직 수임기간은 1차 회기 후반부 2주와 2차 회기 개막후 첫 2주를 포함하도록 되어 있어 실제 수임기간은 10주가 된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날 본회의에서 답변권 행사를 통해 "한 국가가 의사규칙상의 문제인 의장직 수임에 관해 나머지 당사국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해서는 안된다"며 "순번제로 의장직을 맡는 것은 다자기구의 운영의 이점 중의 하나"라고 반박했다. 이라크는 "미국이 일방적인 압력을 행사해서 군축회의의 규칙에 영향을 미치는것은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의장직 포기의사가 없다는 뜻을 피력했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군비통제 및 군축협상 포럼인 유엔군축회의에는 남북한 등 66개국이 당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리비아가 오는 3월17일 개막되는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 의장국으로 내정된 것에 반발, 관례를 깨고 사상 최초로 표결처리를 요구했으나 표대결에서 패배했다. (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 oj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