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는 중산층 이상이 많이 사는 다소 보수적인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가장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교통표지판인 '스톱(STOP)'사인이 유난히 많다. 자동차가 무조건 정차했다가 가야 하는 이 표지판이 요즘 낙서판으로 변하고 있다. 누군가 'STOP'이란 글자 아래에 '전쟁(WAR)'이란 단어를 새겨넣는 것이다. '전쟁반대(STOP WAR)'운동이 미국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대학캠퍼스는 물론 환경·여성·노동단체,심지어 공화당 성향의 기업인들도 동참하고 있다. 미국 최대 구인·구직업체인 핫잡스닷컴(Hotjobs.com)의 리처드 존슨 창업자 등 일부 기업인들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라크전쟁은 10억명의 적을 만들어낼 것'이란 제목의 전면 정치광고를 게재했다. '사담 후세인을 무장해제하는데는 동의하지만 전쟁 이외의 다른 수단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의 전쟁반대운동은 과거 베트남전쟁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에는 학생들의 '종전'요구가 대부분이었지만,지금은 다양한 계층에서 전쟁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는 '평화할머니회'회원들이 매주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고,캘리포니아주의 한 해안가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벌거벗은 몸에 'No War'란 단어를 쓰고 일광욕을 즐긴다.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38개 시의회는 반전 결의안을 통과시켰거나 검토중이다. 인터넷의 발달도 반전운동 활성화에 한몫하고 있다. e메일을 통해 연대형성이 쉽게 이뤄지고,기금마련도 수월하게 된다. 'MoveOn.org'란 인터넷 단체는 40만달러를 모아 반전광고의 상징처럼 돼 있는 1964년의 '데이지 광고'를 다시 TV에 내보낼 정도다. 최근 여론조사는 56%의 미국인이 이라크 파병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반전운동가들은 '침묵하는 다수'의 의사도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침묵'을 대변하는 뜻에서 이들은 18일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외침이 백악관의 부시대통령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하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