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국들 이라크전 조건부 지원 태세
이라크 주변 아랍국들은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국을 지원할 태세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라크 인근국들은 전쟁시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전쟁이 중동지역의 정치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미국의 일방적 시도가 아니라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무장해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조치라는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 정권이 전복된 후 이라크가 분열되거나내전에 빠지지 않도록 미국이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보장할 것과 전쟁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단기간에 끝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그동안의 외교적 노력에서 미국이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지만이라크 인근국들의 경우 이라크전에 대한 속내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정치적, 군사적 지원태세도 다를 수밖에 없고 이들에 대한 미국의 보상도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타임스는 앞으로의 몇주간이 이라크전을 앞두고 이라크 인근국들의 지지를 결집하는 데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며 1일 벨기에 브뤼셀과 영국 런던, 터키 방문 길에오른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비롯해 미국 고위 관리들의 외국방문이 러시를이루는 것도 이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다음은 뉴욕 타임스가 분석한 이라크 인근국들의 입장.
▲소규모 걸프국들=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제일가는 우방인 쿠웨이트는 91년 이곳을 침공해 점령했던 이라크를 미군이 몰아낸 이후 미국과 군사적 협력을 계속하고있으며 장차의 이라크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쿠웨이트의 무하마드 알 바사 외무장관은 이라크전이 유엔의 결의 이행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이라크의 정권교체를 지지하고 있다.
바레인은 전쟁을 회피할 수 있다면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구의 다수를차지하고 있는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은 후세인 정권의 탄압을 받아온 이라크 시아파의 해방을 가져올 전쟁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카타르는 미군이 이라크전 지휘부 역할을 하게될 지휘통제센터를 구축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미 공군기들이 주둔할 수 있도록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를 건설하는데 1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을 정도로 미군과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카타르는이라크전이 시작되기에 앞서 유엔의 2차 결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쟁에 참여할 광범위한 국제연대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 점은 오만이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마찬가지.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의 입장은 다른 아랍국들에 미치는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사우디 정부는 지금은 미군기들이 이라크 남북부의 `비행금지구역'을 순찰하다 공격받았을 때 이라크를 보복공격하는데 자국의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 국내외의 많은 관측통들은 전쟁이 벌어질 경우 사우디가 결국 미국을 지원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우디가 협조를 거부할 경우 60년동안이나 군사적 보호와 함께 아랍권에서의 지도적 위치를 제공해온 미국과의 관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와 기성 종교지도부로서는 거세게 일고 있는 반미감정과 미군 주둔에 대한 반발이 문제다. 사우디는 미국이 다른 대안들을 최대한 모색했음을 보이고유엔의 분명한 법적인 제재가 내려진 뒤에 군사행동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사우디의 한 관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지역의 불안정이 초래되는 것은물론 반미 테러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사우디는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미국에 협력하려 하겠지만 이런방식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정치적, 군사적 효과를 반감시키게 될 전망이다.
▲터키=이슬람에 기반을 둔 정당 주도의 새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전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시사했으며 월포위츠 부장관 방문시 구체적인 요청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압둘라 굴 총리는 "물론 전쟁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리는 이웃국가에대량파괴무기가 존재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터키의 지원을 얻기 위해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지지와 금융지원,전쟁후 이라크 북부 지역에 쿠르드족 독립국 설립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보장, 이라크의 침공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지원 등 다양한 유인책을 강구중이다.
▲이란=이라크와 함께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국가이면서도 이라크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바라는 미묘한 입장이다. 지금까지 나온 공식적인 언급은 모두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란이방관하거나 심지어 미국에 협조할 것이라는 조짐도 있다.
이란 해군은 이라크 석유 밀수출 선박에 대해 자국 영해를 봉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의 밀수출 단속을 돕고 있다. 이란은 또 자국의 영향권 내에 있는 이라크시아파 반정부 단체 지도자에게 미국이 후원하는 이라크 반정부단체 회의에 참석할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란군도 후세인 정권이 전복되면 반군단체인 무자헤딘 알 할크가 이란을 공격할 때 사용해온 이라크내 기지들을 잃게 되므로 이를 반길 것으로보인다.
▲기타 중동 국가들=이집트는 지난 걸프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이라크전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지원을 감안할 때 이집트는 미군이 자국 공군기지들을 재급유와 보급 등에 사용하는 것은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집트가 국제 수로로 간주하고 있는 수에즈 운하를 봉쇄할가능성은 거의 없다.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과거 이라크를 통치했던 요르단 왕가의 이라크 복귀에 관심이 있다는 관측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압둘라 2세 국왕은 이라크전 참여를 거부했던 고(故) 후세인 국왕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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