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다운 경영이 특기인 한국의 그룹총수들이 이 정도로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어떻게 회사가 굴러갈까? 선거와 무관한 테마로 인터뷰를 신청해도 '선거 끝날 때까지는 무리'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20일 아침 일본의 한 신문은 '한국 기업인들이 대통령 선거를 피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는 서울발 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었다. 기사의 논조는 이런 것이었다. "한국 젊은 직장인들의 관심거리는 이제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구석으로 밀려나고 아파트(부동산)와 자녀교육(유학),그리고 직장(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지)이 최대 화두다. 여론이 시큰둥하자 대통령 후보들간의 입싸움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그리고 경제계에서는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 총수들의 외유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시중에선 대통령이 바뀌고 나면 A그룹이 도산하고,은행장 중에서는 X씨 등이 물러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기사의 핵심은 경제가 정치에 휘둘릴 때가 왔다는 것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경제의 위상이 높아지고,기업들이 맹활약하고 있다지만,한국에서는 아직도 경제가 정치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구미 선진국들로부터 '야합'과 '파벌싸움'의 대명사로 비판받는 일본정치는 일본 국민들로부터도 푸대접 대상이다.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20%선에 머물고,유권자들은 무소속의 신인 정치가에게 표를 몰아주고 있다. 기업인과 이코노미스트들은 역대정권이 정치를 엉망으로 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몰매를 맞으면서도 정치가 국민의 위에 '군림'하고,이유 없이 경제를 긴장시킨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한국을 대하는 일본의 시선은 달라져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정보기술선진국을 일궈낸 저력에 대다수 일본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자 기업인들이 줄줄이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현실은 이들에게 수수께끼가 될 것이 틀림없다. 20일 서울발 기사는 3류 취급 받는 일본정치보다 한국의 정치가 더 조롱거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뼈 아픈 현지 보고였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