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14일 이탈리아 의회에서 연설하게 되면서 이탈리아 전역이 들떠있다. 현지 언론들은 연일 교황 연설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으며 이탈리아 통신부는상하원 의원들을 배경으로 교황의 모습을 담은 기념 엽서를 찍어냈고 바티칸도 의회연설때 의원들에게 나눠줄 기념주화를 주조해 놓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통일로 세속적인 권력을 완전히 상실한 교황청의 역대 교황들은 통일 이탈리아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로 부르며비타협적인 자세를 1백년이상 견지해왔다. 이런 까닭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의회 연설은 교황청과 세속국가 이탈리아의 해묵은 갈등을 치유하는 거보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교황의 의회연설이 이른바 `포르타 피아의 위약'을 극복하는 상징성을 갖는다고 대서특필하는 한편 교황이 어떤 내용의 연설을 하게될지추측기사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교황이 의회연설에서 대사면 같은 것을요구할 것이라는 희망섞인 예측도 나오고 있으나 교황의 연설에는 유럽의 기독교 전통, 생명윤리, 평화, 정의, 민주주의와 같이 요한 바오로 2세가 누누이 강조해온 주제가 다뤄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포르타 피아의 위약'이란 지난 1870년 이탈리아 통일당시 비토리아 에마누엘레2세 왕의 군대가 당초 약속을 깨고 로마를 점령한뒤 포르타 피아에서 로마를 수도로 선언하고 로마에 대한 교황의 세속적 지배권을 종식시킨 사건을 일컫는 것.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바티칸 시티 내의 교황의 독립권을 인정하고 영토상실에 대한보상방안을 제시했으나 피우스 9세 교황은 통일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로 지칭하면서 세속적인 권력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의 갈등은 지난 1929년 양측이 상호주권을 인정하고 로마 가톨릭을 이탈리아 국교로 한다는 내용의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하면서 공식적으로는 해결됐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앙금은 이후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채 대를 이어왔으며 적극적인 관계개선 노력이 시작된 것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외국인출신으로는 455년만에 교황에 오르면서 부터였다. 예컨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지난달 로마 명예 시민증을 받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 성사된 것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과거 이탈리아 대통령궁을 방문한 바 있으나 의회를 찾은 적은 없으며 어떤 국가의 의회에서 연설한 것도 고국 폴란드와 호주, 이탈리아내 소국 산마리노의 세차례 뿐이었다. (바티칸 시티 AP=연합뉴스) inn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