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 수용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아랍연맹 외무장관들이 10일 이라크의 결의안 수용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어 주목된다. 아랍연맹 22개 회원국 외무장관과 정부 대표들은 유엔 안보리가 이라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지 하루만인 9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카이로에서 특별회의를열고, 아랍권의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외무장관 회의 첫날은 아랍연맹이 내린 기존 결정의 이행상황을 평가하는 후속회의가 열렸으나, 이날 본회의에서는 이라크 현 상황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나지 사브르 아라크 외무장관은 이날 "바그다드에서는 현재 유엔 결의안 내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추후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국제사회가 유엔 결의 통과를 놓고 오랫동안 벌인 협상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계획을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고 지적한 뒤 결의안 수용을 놓고 아랍연맹회의에서 충분히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이라크측의 신중한 반응과는 달리 아랍 각국 대표들은 이라크가 미국의 일방적인 무력사용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라크의 유엔결의안 수용을 설득하고 있다. 사우드 알 파이잘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은 카이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라크가 대(對)이라크 유엔 결의안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랍국들은 `무력자동사용' 권한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안보리 회원국 시리아의 보장을 받고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을 수용한 것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파이잘 메크다드 유엔 주재 시리아 부대사도 BBC와의 회견에서 "결의안 어디에도 일방적인 행동을 허용하는 조항은 없다"며 "시리아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무력 자동승인'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확인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이란 관영 INA통신은 이라크 고위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라크는 미국 주도의 결의안이 "나쁘고 부당"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결의안을 "조용히 검토중"이며 "조만간 적절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레바논의 마흐무드 함무드 외무장관은 중동지역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라크에 대해 유엔 결의안을 수용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랍 외교력이 지난 9월 이라크가 유엔사찰단 재입국을 허용토록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며 이번에도 "이라크와 유엔간 협력이 지속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흐메드 마헤르 이집트 외무장관도 이라크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유엔의 새 결의를 수용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마헤르 장관은 이라크가 이미 유엔 무기사찰단의 무조건 재입국을 허용했으며,이는 이라크가 앞으로 내릴 결정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결의 발표 후 이라크도 동등한 정신으로 결의를 대할 것으로 믿는다"며 "이것이 우리가 희망하는 바"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아랍 외무장관들은 이 회의에서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단이 프로이며 중립적이어야 하며, 이라크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마헤르 장관은 회의에 앞서 나지 사브르 이라크 외무장관과 데이비드 웰치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를 차례로 만났다. 셰이크 아흐마드 알-파드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이라크가 유엔 결의를 수용하는것이 중동지역과 이라크 국민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라며 아랍국들은 "이라크에 대해 결의 이행을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르단의 마르완 무아셰르 외무장관은 요르단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아직 외교적 위기 해결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랍 정부 관리들과 분석가들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우려를 달래기 위해 수정된 유엔 결의가 최소한 전쟁 가능성을 줄이는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이 유엔결의를 이라크에 대한 공격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번 아랍연맹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이라크 위기 외에도 미국이 최근 제시한 3단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안도 주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