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지 6개월만에 국내는 물론 유럽과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지난 5월5일 실시된 대선 2차 투표에서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국민전선(FN) 당수에 맞선 '범국민 후보'로 나서 82%라는 유례없는 지지율로 당선됐다.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은 지난 95년부터 올 5월까지 7년에 이르는 1기 집권 때만해도 좌파 내각과의 권력분점(코아비타시옹), 7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는 파리시장 재직시절 부정부패 스캔들 등으로 인해 프랑스 정치사상 최악의 약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은 재선 6개월을 맞아 국내적으로 샤를 드 골 전대통령에버금가는 강력한 국가원수로 변신했으며 유럽연합(EU), 미국과의 관계 등 외교에서도 국제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라크 대통령은 재선이 확정되자마자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선거공약 이행에 착수해 35시간 근로제 완화, 감세, 치안강화 등을 밀어붙였다. 새 정권과 사회 이해집단 사이의 '밀월'이 끝나가면서 노동계가 파업 등 실력행사를 위협하고 있으나 야당인 사회당을 포함해 어떤 사회세력도 시라크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우파 정부의 새로운 개혁 시도를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다 최근 몇 달 동안 계속된 이라크 위기, 유럽연합(EU) 확대 등 굵직한 국제현안은 시라크 대통령을 세계 유일의 초강국 미국마저도 무시하지 못할 국제적인지도자로 부상시켰다. 시라크 대통령은 유럽여론이 결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해 유럽안전보장이사회를 무대로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공격 저지에 앞장섰다. 안보리 거부권을 무기로 한 프랑스의 대미 압력은 무기사찰을 빌미로 자동적인이라크 공격권을 받아내려는 미국을 아직 굴복시키지는 못했으나 미국의 대 이라크 강경입장을 완화하는 등 부분적인 양보를 얻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외교전은 서방강대국 중 국제외교분야에서 미국을 추종하다시피하는 영국이나 1.2차대전 선전국의 콤플렉스로 인해 '정치 난쟁이'에 불과한 독일이 엄두를내지 못하는 것으로 유럽과 아랍권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올해 69세로 30대 초반에 정계에 입문해 파리시장 18년, 총리 2번, 장관과 의원을 수없이 지낸 시라크 대통령의 30년 정치 이력은 지난달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시라크 대통령은 EU 확대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농업보조금 개혁에 대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와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국내 정치문제로 인해 입지가 좁은 슈뢰더 총리로부터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가능했던 이 합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시라크 대통령은 항의하는 블레어 총리에게 "아무도 내게 당신처럼 무례하게 굴지는 않소"라며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었던 양국 정상회담을 그 자리에서 취소했다. 불-독 농업보조금 합의는 반세기에 걸친 유럽통합 운동을 주도해왔던 양국협력정신의 상징으로 평가받았으며 최근 몇년 동안의 불-독 관계 냉각을 계기로 유럽문제를 주도하려던 영국과 블레어 총리에게 일격을 가했다는 것이 언론의 시각이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미국이 이라크 무력공격권이 명시된 안보리 결의를 고집할경우 프랑스가 그간의 위협대로 과연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집중돼있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