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특수부대에 의해 진압된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인질극 진압당시 사용된 정체불명의 독가스의 성분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데다 특수부대의 진입시점에 대해서도 러시아 당국과 다른 증언들이제기되고있다. 여기에 러시아 특수부대가 진압과정에서 인질극 현장을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어 이번 작전을 "성공작"으로 평가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독가스 논란= 무장하고 있는 인질범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러시아 특수부대가 모스크바 남부 `돔 꿀뜨르이(문화의 집)' 극장 환기구를 통해 주입시킨 가스에 대해러시아 당국은 당초 `수면가스'라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가스로 인해 인질범은 물론 인질들마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나자 이 가스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가스사용이 정당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잇따라 제기되고있다. 무엇보다도 인질극 진압후 병원에 후송된 인질들 가운데 현재 150명이 중환자실에 있으며 이들 중 45명 가량이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전하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 시립병원 수석의인 안드레이 셀촙스키는 기자회견을 통해 646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진압과정 도중 숨진 인질 117명이 거의 모두가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가스가 심장과 폐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물질을 흡입해도 사망하지는 않는다"면서 인질들이 3일간의 인질극으로 육체적으로 허약해진 상황에서 좁은 공간에 이 가스가 투입됨으로써 피해가 커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태가 호전돼 27일 퇴원한 일부 인질들의 입을 통해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가스가 주입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을 잃고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났으며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고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은 빗발치는 부상자 가족들의 항의에도 불구, 여전히 가스의정체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이번 작전에 대한 부정적 여론확산을 부채질하고있다. 예브게니 예브도키모프 모스크바 시립병원 수석 마취의는 진압작전에 사용된 가스가 일종의 향정신성 물질이며 `고농도'로 분사될 경우 의식불명이나 호흡.혈액순화 장애 등 신체의 기본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가스는 일반적인 마취제로 사용될 수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전문가들은 최소한 상당한 농도의 마취제이거나 발륨같은 강력한 진정제,또는 BZ가스 같은 환각제일 가능성을 거론하고있다. 한 화학자는 진압작전 과정에서 응급요원과 의료진들이 인질들에게 해독제를 투여해야 했다는 지적을 했지만 러시아 시립병원 의사들은 해독제의 존재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린, VX 등 신경가스나 소만가스와 같은 신경제재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가스들은 모두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의해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다. 러시아도 1997년 CWC에 서명했다. 여기에다 인질들의 가족들은 물론 상당한 대우를 받는 외국 대사관 조차도 당국으로부터 자국 인질들의 소재를 확인받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등 인질가족들에 대한 당국의 무관심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질로 잡혔다 알수없는 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인질들을 찾는 것을 두고 "또다른 인질찾기"라는 얘기까지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진압작전이 치명적인 독가스를 사용해 많은 희생자를 내게한 무차별적 작전이 아니었느냐는 여론이 확산되고있는 것이다. ▲진입시점 논란= 뮤지컬 관람객 850명을 인질로 잡고 있던 체첸 인질범들이 인질 2명을 살해하기 시작해 어쩔 수없이 무력진압에 나섰다는 러시아 당국의 발표를뒤엎는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극장 관계자인 게오르기 바실리예프는 가스 질식 증세에서 깨어나 퇴원하면서 "인질극 진압작전은 26일 오전 5시께 극장 환풍구를 통해 가스가 주입되며 시작됐다"면서 "그 전까지 극장은 평온 상태를 유지하고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특히 "내가 알기로 인질범들은 극장에 가스가 주입되기 전까지 단 한명의인질도 살해하지 않았다"고 말해 러시아 당국을 곤혹스럽게하고있다. 또다른 인질들도 가스가 주입되면서 인질범들이 동요하기 시작하는 등 상황이악화됐다고 증언했다. 결국 평화적으로 협상을 통해 상황을 해결할 수있었는데 특수부대가 먼저 유독성 가스를 살포하며 공격을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앞서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내무차관은 "테러리스트들이 극장에 폭발물과 지뢰를 설치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인질 전원과 작전에 투입된 병력 등 1천여명이 사망할 수도 있었다"면서 1시간여만에 전광석화처럼 끝난 이번 진압작전을 성공작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러시아 특수부대에 의한 선제공격 논란이 제기됨에 따라 러시아 당국에 대한 비난여론도 그만큼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조작 의혹= 상태가 호전돼 퇴원하는 인질들의 입을 통해 이른바 `현장조작의혹'이 제기되고있다. 진압작전이 종료된 직후 러시아 TV에 방영된 현장장면에서 죽은 인질범들 사이에 술병과 주사기들이 발견된 것과 관련해 인질들이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병원 퇴원길에 기자들과 만난 한 인질은 "그들(인질범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으며 함부로 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우 잘 훈련받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바실리예프도 "인질범들은 각각 맡은 임무가 따로 있는 듯했다"면서 "대부분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AP.AFP=연합뉴스)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