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옳았지요. 이번에도 한국은 멋지게 잘 해냈습니다." 프랑스 중앙은행(Banque de France) 사무실에서 만난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인사도 건네기 전 대뜸 이같이 말했다. 캉드쉬 총재는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에게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애기하는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IMF 역사상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한 한국이 축구로 세상을 또다시 놀라게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세계화의 뒷면에는 '리스크'란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경제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한국은 월드컵을 훌륭히 치르면서 세계화속에서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 줬다"고 강조했다. [ 대담 = 강혜구 파리 특파원 ] ----------------------------------------------------------------- -지난 주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이번 사태의 악영향이 아시아 전체로 파급되지나 않을지 우려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관광산업이 위축되고, 외국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등 단기적으로 부정적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인도네시아 정부와 국민은 냉철함을 잃지 않는 현명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미국 9.11 사태 이후 테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듯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사회불만이 높아지는게 그 이유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 같은 분위기를 테러리스트들이 악용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사회적 빈부격차를 줄이며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국제사회도 과잉반응을 보일게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대응책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최근 출간한 저서 '이번 세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세계화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경제위기가 주변국으로 파급되고, 테러가 세계 문제로 확산되는 현상을 지켜볼 때 세계화를 21세기 인류가 나아갈 길이라고 단언하는 데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세계화를 두려워하고 반대하기보다는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인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효과적 방법론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세계화는 잘 관리하면 균형적인 세계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물론 리스크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재된 위험이 두렵다고 기회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계화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출간한 저서에서도 세계화에 따른 리스크를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문제점부터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주는 리스크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세계화 진행과정의 차이와 결과의 비균형적 분배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게 됩니다. 이를 해소하려면 세계화 추진과정에서 후진국과 빈국에 대한 지원과 정책적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환경과 마약범죄 등 과거 한 특정 국가의 사회문제가 국경을 넘어 국제적 문제로 비화됩니다. 9.11 사태나 인도네시아 폭탄 테러가 그것입니다. 함께 문제 해결을 하겠다는 국제사회의 동참 의지와 행동이 필요합니다. 셋째,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입니다. 우리는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한 나라에서 발생한 경제위기는 화약고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주변국으로 확산돼 전 세계를 두렵게 만듭니다. 세계적 차원의 관리와 책임감이 내재된 국제금융시장의 기본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제금융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합니까. "은행 및 금융시장의 관리감독 강화, 투명성 확보, 금융시장의 윤리적 행동지침과 규범 도입 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민간 금융기관들이 금융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IMF를 현재의 상황에 맞도록 역할과 기능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오늘날처럼 국제자금이 국경 없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IMF가 효과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IMF가 신속하고 효과적인 처방과 치료도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대담에서 IMF 무용론을 제기했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IMF 총재 재직시부터 프리드먼 교수의 국제금융기구 관련 제안이나 지적을 신중히 듣고 생각을 해왔지만 그가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때 그는 IMF 처방전에 대해 심한 비난을 하며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국은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세계 금융위기 사상 가장 빠르게 이를 벗어났습니다." -캉드쉬 회장께서 IMF 총재로 계시던 바로 5년 전 한국은 금융위기를 맞았습니다. 지금의 한국경제를 평가해 주십시오. "2000년 2월 IMF 총재직 퇴임식 기자회견장의 질문이 떠오르는군요. '미셸 캉드쉬는 한국 경제위기의 상징적 인물로 통하는데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해 매우 행복하게 느낀다. IMF 한국위기 전담반의 문제 분석과 노력이 한국의 위기극복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IMF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희생정신과 용기 덕분이란 걸 강조하고 싶다'라고요. 그날 이후 나는 한국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 말을 반복합니다." -한국의 경제구조가 IMF 이전에 비해 상당히 튼튼해졌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시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IMF 프로그램이 지적했듯 외부에서 발생한 문제에 저항할 수 없을 만큼 허약했습니다. 한국은 구조개혁을 통해 아주 큰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차기정부에서도 개혁은 계속 추진돼야 합니다. 국내 경제가 외부의 부정적 요인 때문에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경제구조를 강화해야 합니다." -IMF 이후 세계화 흐름 속에 한국이 정체성을 잃어 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흔히들 세계화는 지구촌을 단조롭고 보편적인 하나의 규범으로 묶을 것이라 우려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적 정체성과 세계화는 상호 양립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때문에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더욱 우수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그 가치를 승화시켜 나가라고 나의 친구 한국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