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연쇄 저격사건'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와 인근 버지니아주 및 메릴랜드 주민들은 14일 콜럼버스데이 연휴를 맞아 잠시 긴장을 놓고 있었다. 지난 2일 이후 8명의 사망자와 2명의 중상자를 낸 연쇄 저격사건이 주로 평일 대낮에 이뤄졌기 때문에 연휴를 맞은 주민들은 추가 사건보다는 수사 속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연휴 마지막 날을 보내던 주민들은 그러나 밤 9시15분(현지시간),'11번째의 총성으로 또 한명이 죽었다'는 속보에 넋을 잃은 분위기였다. 11번째의 총성이 지금까지의 저격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건 현장이 워싱턴DC에서 멀지 않은 버지니아주 폴스처지에 있는 가장 번화한 상가 주차장이었다는 점에서 주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연쇄살인사건의 공포를 경험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게 역사적 기록이지만 미국에선 유난히 연쇄살인사건이 잦았다. 지난 10여년간 대형 사건만 해도 무려 6건에 달했다. 96∼98년 로버트 예이츠가 15명을 살해했고,엥겔 레젠디지는 97∼99년에 12명을 살해,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다. 미 연방정부가 발표하는 민간인 총기소지 현황을 보면,연쇄살인사건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00년 한해에 팔린 총이 4백여만정에 달하고,소지하고 있거나 유통중인 총기는 2억5천만정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민들은 작년의 9·11테러와 곧이어 닥친 탄저균 테러공포로 미국이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란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불과 1년여만에 다시 미국의 심장부를 흔드는 연쇄 저격사건으로 절망감은 더 심해지고 있다. 9·11테러나 지난 주말에 터진 인도네시아 발리의 폭탄 테러와 달리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소행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목격자를 확보,수사에 진전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최고의 경제력으로 세계평화유지군을 자처해온 미국이 안방의 안전도 지키지 못한다는 좌절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