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해변 관광지 발리에서 12일 심야에 18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이트클럽 폭발사건은 당일 정황과 최근 국제 사회의 움직임 등을 감안하면 예고된 테러의 성격이 짙다. 발리 경찰은 이번 사건 배후 및 성격과 관련해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으나 안보 및 치안 책임자들은 극히 이례적으로 테러세력의 소행으로 단정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치.안보조정장관은 13일 반둥에서 폭발 사건 소식을 보고받고 "테러세력은 이미 우리나라에 존재한다. 특히 관광지에 잠입했다"며 발리 쿠타 사리클럽 폭발이 테러에 의한 범행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사건은 우리 민족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배후와 관련해 A나 B를 지목하는 식으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이슬람권을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또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단호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향후 테러 대응 방안을발표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다이 바크티아르 경찰청장도 13일 "인도네시아 사상 최악의 테러"라고 지적한뒤 "경찰은 앞으로 있을 지 모를 국제 테러리즘을 포함해 다른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달 23일 자카르타 소재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인접 지역에서 폭발물이 터진 것을 비롯해 지난 2000년부터 수 십차례에 걸쳐 발생한 폭발 사건과 관련해 테러 가능성을 일축한 전례에 비춰 이번 발표는 극히 이례적이다. 안보 및 치안 책임자들이 이번 사건을 테러로 단정한 것은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주변국들로부터 알-카에다 등과 연계된 국제테러세력이 인도네시아로 진출했음을 알리는 정보를 입수한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산 위라유다 외무장관은 지난 2일 싱가포르를 비롯한 남중국해 연안 11개국대표 75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카르타에서 열린 안보포럼에 참석해 테러 가능성을 강력 경고했다. 그는 "우리의 도전 가운데 하나는 나머지 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것은 테러 위협이다. 그같은 위협 앞에서 안심할 수 없다. 해안선은 지역 평화와 안정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 테러에 취약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테러 공격이 감행될 가능성과 관련해 최근 미국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자카르타 주재 미국 대사관과 수라바야 총영사관은 테러첩보가 입수됐다는 이유로 9.11 1주년 기념일 하루 전날인 지난 달 10일부터 6일 간 공관 업무를 중단했으며 며칠 뒤에는 자국민의 인도네시아 여행 경계령을 내렸다. 미국 대사관은 지난 달 19일 서방인에 대한 테러 공격 가능성을 알리는 정보가입수된 만큼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고 있거나 현지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은 신변 안전에 각별히 주의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랠프 보이스 미국 대사의 최근 행보에서도 미국이 테러 가능성을 이미 감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이스 대사는 최근 1주일 동안 유도요노 정치.안보조정장관과 엔드리아르토노수타르토 통합군사령관, 하산 외무장관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고위 관계자들을 연쇄접촉, 대테러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지난 달 23일 자카르타 폭발사건은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를 겨냥한 테러행위라며 배후 세력을 조속히 규명할 것을 요청한데 이어 미국인과 시설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관 직원들을 본국으로 철수시킬 것이라고 경고한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정보당국도 최근 자국내에서 암약중인 쿰풀란무자헤딘말레이시아(KMM)가 인도네시아 테러조직과 연계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다가 미수에 그쳤으며 또 다른 테러를 기도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번 발리 폭발사건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정보당국은 나이트클럽 폭발사건의 테러 가능성과 관련해 12일 밤발리 주재 미국 총영사관 부근 지역과 북술라웨시 주도 마나도 주재 필리핀 총영사관 건물에 연쇄 폭발 사건이 발생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에 대한 전쟁 권한을 승인한데 때맞춰 테러세력이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서방인에 대한 무차별 보복공격 차원에서 3곳에서 폭탄테러를 감행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특히 발리 쿠타 `사리클럽'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영국과 함께 미국의 이라크공격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호주인들이 이 나이트클럽에 평소 가장 많이 몰리는 점을테러세력이 의도적으로 노린 것으로 정보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할 당시 사리클럽에는 대부분 외국인인 손님 450명이 입장했으며 이 중 호주인이 40%를 차지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최근 다양한 채널을 통해 테러 감행 가능성을 알리는 경고음이 강도높게 울렸음에도 불구,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슬람권의 반발 등을 의식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미연에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인도네시아 이슬람권은 최근 미국이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공격한다면 이는 국제법을 위반하고 국제평화를 짓밟는 행위인 만큼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대일특파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