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콜 전(前) 독일 총리가 26년 간 의원으로 활동해온 연방하원을 12일 조용히 떠났다. 이로써 2차대전 이후 독일 사상 최장수 총리를 지내고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거물 정치인이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오는 22일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을 발표한 콜 전 총리에겐 이날부터 시작된 내년도 예산안 심의 회의가 자신이 참석하는 마지막 하원 본회의였다. 그러나 유럽통합의 기초를 다진 서방진영 최장수 국가 지도자인 콜 전 총리의 마지막 의회 본회의 참석과 작별은 쓸쓸했다. 경제 일간지 한델스 블라트는 "작별은 조용하고 고요했다"고 묘사했다. 또 오랜 세월 독일을 이끌어온 콜 전 총리에게 그의 출신당인 기민당은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독일 언론도 제1공영 TV ARD와 한델스 블라트 등 몇몇 곳만 콜 전 총리의 마지막 본회의 참석과 작별을 자세히 다뤘다. 프리드리히 메츠 기민당 원내총무가 이날 연설 도중 "콜 전 총리 재임 16년 간의 어느 한 해도 지난 4년 간의 적.녹연정 시절 보다는 나았다"고 칭송하기는 했다. 자신의 의석에서 친한 원로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지켜보던 콜 전 총리는 연설이 끝나자 박수로 화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본회의장을 떠났다. 한 마디 연설이나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고 독일 언론은 전했다. 기민당으로선 콜 전 총리가 16년 간 장기집권의 영광을 안겨준 거목이다. 아울러 퇴임 이후 터진 정치헌금 스캔들로 당을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정권 탈환의 꿈을 흔들리게도 했던 애증이 함께 서려 있는 인물이다. 콜 전 총리로서는 98년 총선에서 사민당 출신 게르하르트 슈뢰더 현 총리에게 패배한 뒤부터 정치헌금 스캔들 등으로 시달린 지난 4년 간이었다. 최근에는 사민당 소속인 볼프강 티어제 하원의장을 나치 핵심인물에 비유하며 비난해 물의를 빚었다. 적.녹연정 의원들은 11일까지도 이 문제로 콜 전 총리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콜 전 총리는 하원의원을 그만두더라도 당분간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마지막 본회의에 참석한 직후에 콜 전 총리는 메르츠 원내총무와 함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로 기민당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떠났다. 또다른 전직 총리들처럼 국가에서 지급하는 관용차를 타고 있으며 베를린에 사무실을 열어놓고 있다. 한편 십여일 뒤에는 하원의원 가운데 약 3분의 1이 의회를 완전히 떠난다. 이번9.22 총선 출마를 하지 않은 의원들이다. 여기에는 기민당 출신 루돌프 자이터스 전내무장관, 녹색당의 재정전문가 오스왈트 메츠거, 민사당의 크리스타 루프트, 자민당 당수와 부총리겸 외무장관을 지낸 클라우스 킨켈, 여성으로서 하원 부의장과 가정부 장관을 지낸 앙케 푹스 등 수많은 원로의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콜 전총리와 함께 이들이 떠남으로써 한 시대가 마감된다고 할 수 있다. 디트리히 아우스터만 기민당 사무총장이 "퇴임 뒤에 콜 전 총리는 '위대한 정치가이자 행정부 수반, 명 연설가'로 진가를 인정받게 될것"이라고 말한 것은 콜 전총리 뿐아니라 이.퇴임 원로들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라고 한델스 블라트는 밝혔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