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무력공격 가능성을 둘러싸고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강대국들의 입장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입장 차이는 이라크 공격을 저울질하고 있는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 이 3개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있는 가운데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주말 독일 하노버에 있는 게르하르트 슈뢰더총리 사저를 방문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가능성에 대한 양국 입장을 조율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어 9일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을 통해 이라크 문제에 대한 프랑스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주 미국의 대신해 이라크 공격 지지를 호소하는전화 정상외교를 펼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미국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으로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방문해 이라크의 위협과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했다. 이같은 외교전에서 드러난 결과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독일-강력 반대,프랑스-조건부 찬성, 영국-강력 지지의 입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라크 문제를 유엔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같은인식을 갖고 있으나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의 군사적 대응 방식에 대해서는큰 입장차를 보였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슈뢰더 독일 총리는 지난 7일 가진 정상회담에서 ▲유엔무기사찰단의 무조건적인 이라크 재사찰 ▲이라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차후 대처방안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 및 결정 등 이라크 문제 해결에 관한2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이 실제로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군사적으로 동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연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프랑스는 유엔안보리 논의 및 결정사항에 따른다는 입장을 밝혀 안보리가 찬성할 경우 이라크 공격에 군사적으로 동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독일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유엔의 승인 아래 단행된다 하더라도 이공격에 군사적으로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냉전시대 국가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온 독일이 미국의 국제외교 정책에 이처럼정면으로 반기를 들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여기에는 이달 중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국내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국은 미국이 유엔의 승인을 얻지 못한 채 이라크를 공격하더라도 미국의공격에 무력으로 동참하겠다는, 강력한 대미 지지 의사를 밝혔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 공격 참여에 대한 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위해 피를 흘릴 각오가 돼 있다"며 이라크 공격에 대한 서유럽 국가들의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佛, 獨, 英의 이같은 입장차는 이 3개국이 EU의 주요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EU가 주요 국제문제에 대해 공동외교 노선을 표방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주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EU 내 이같은 이견과 분열은 국제사회 공동의 이라크 문제 해결에 또다른 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