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우리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이번 전쟁은 자유를 증오하는 사람들과의 전쟁이다.자유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번 전쟁에 참여해 힘껏 싸우자." 국가안보나 독재자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전쟁을 치를 때면 종종 시민의 자유가 묵살되곤 한다. 실제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 시민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자유의 박탈을 경험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이 세계무역센터(WTC) 건물을 무너뜨렸을 때의 긴박한 상황을 상기해보자. 어떤 국가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안보를 위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테러리스트들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또 다른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9·11 테러를 계기로 경찰 당국의 시민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공공 장소에서 가방을 수색하는 일은 다반사가 됐으며,시민들의 금융거래는 철저히 감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조치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커다란 효과를 봤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안전을 어느 정도 지켜냈다고 해도 자유를 침해하는 모든 조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법률과 법원의 견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감시로 일관해왔다. 미국 시민권자 중 적국에 협조했다고 예상되는 인물에 대해서는 재판을 무기 연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 헌법은 올바른 재판절차를 생략한 채 경찰 당국이 압수수색이나 구금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을 이유로 자유를 계속해서 억압한다면 시민들은 크게 분노할 것이고,이는 결국 테러리스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꼴이다. 미국은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세상 어디서도 안전한 피난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국은 언제나 자유를 제공하는 나라로 여겨져 왔다. 다행히 최근 미국 법원이 나서 행정부의 자유침해 조치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행정부가 수백명에 달하는 테러 관련자들의 추방명령과 관련,심문 절차를 비밀리에 진행시킨 것은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행정부가 공개 재판을 거부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죽어가도록 조장하고 있다"며 "테러에 대한 감시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라도 공개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난'과 비슷하게 테러 역시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 이제는 테러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테러의 위협에 직면해 시민의 자유를 경시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결국에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주지 말아도 되는 승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정치인들이 테러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런 조치를 내리지 않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8월31일)에 실린 'A needless victory for terror'란 기사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