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불립(無信不立)'.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중화유상(中華儒商)세미나'의 초청장 첫 머리에 쓰여진 문구다. '신용이 없으면 서지 못한다'는 뜻.그 옆에는 '의리겸고(義利兼顧·의리와 이익을 모두 중시한다)'라는 구절도 보였다. 공자(孔子)기금회 등이 공동 주관한 이번 세미나 주제는 중국 유상(儒商·유교 덕목을 갖춘 상인)의 전통을 현대 비즈니스에 되살리자는 것.좌석과 복도를 가득 메운 3백여명의 참석자들로 세미나장은 열기가 달아올랐다. 유상은 원래 유가(儒家)의 경전을 배워 관직에 오르고자 했으나 그 뜻을 펼치지 못해 상업의 길로 접어든 상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은 속임과 배신을 배척,성실과 신용으로 중국 상계를 지켜왔다. 안후이(安徽)성에 근거를 뒀던 중국 최대 상방인 후이상(徽商)이 대표적 유상으로 통한다. 유상이 오늘날 다시 각광을 받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상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베이징 상사원들이 들려주는 중국 비즈니스 관행은 유상과는 거리가 멀다. 외상으로 물품을 넘겼다가 돈을 떼이는 경우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한 사업가는 가짜상품에 밀려 2년 이상 공을 들인 플라스틱 식기공장을 폐쇄해야 했다. 계약 체결 후 가격 변동 요인이 발생,자기가 불리하다 싶으면 계약을 파기해 버리는 파트너도 적지 않다. 디자인 모방은 비난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세미나에 참석한 원로 경제인 징수핑(經叔平) 전국공상연합회 주석이 이런 중국 상계를 한탄했다. "시장경제는 곧 신용경제다. 신용이 깨지면 시장이 성립할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가입도 우리가 신용을 지키겠다는 국제적 선언이다. 지금처럼 신용이 없어서야 어떻게 시장경제를 할 수 있겠는가." 덩샤오핑(鄧小平)이 '부자가 되는 것을 용인한다'고 한 이후 중국인들은 돈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신용과 도덕을 팽개친다. 상도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형성될 여유가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중국 상계의 버팀목이었던 유상의 전통을 더욱 더 그리워하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