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B 그럽맨.통신업체의 주가를 좌지우지했던 월가 최대의 스타 애널리스트.그가 표지모델로 등장한 비즈니스 잡지가 한둘이 아니고,통신업계의 대형 M&A(인수합병) 뒤에는 늘 그의 '리포트'가 보증서처럼 따라다녔다. 연봉 2천만달러(약 2백50억원)와,퇴직보너스 3천2백만달러(약 4백억원)라는 몸값이 그의 파워를 짐작케 한다. 이같이 막강한 영향력 탓에 월드컴 파산 이후 의회청문회와 수사당국 조사에 단골손님처럼 불려다니던 그가 지난주 소속회사인 살로먼 스미스바니에 사표를 냈다. 더 정확하게는 회사쪽 압력을 받아 사실상의 권고사직을 당했다. '살로먼=그럽맨'이라는 등식을 피하려는 회사측의 판단에서다. 그가 회사를 떠나며 작성한 사임의 변이 월가의 화제다. 그는 자신의 종목추천이 잘못됐다는 지적에 대해 추천시기와 주가추이를 상세히 기술하면서 "잘못한 게 없는 데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항변했다. 또 "나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들이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신주에 대한 인기가 절정일 때 그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당시에는 그럽맨과 가깝다는 게 일종의 훈장이었으나,이제는 그 사실이 드러날까봐 쉬쉬하며 지내는 애널리스트들이 한둘이 아니다. 통신업계의 몰락을 혼자 책임진다는 느낌이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일반투자자들은 그의 항변에 분노하고 있다. '자기 가족의 고통'을 얘기하면서 자신이 추천한 주식을 샀다가 고통받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점에서다. 2000년 가을 월드컴 주가가 25달러일 때 이 주식이 87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분석을 믿고 주식을 샀다가 퇴직금과 아이들 학자금을 날린 가정이 한둘이 아닌 상황이다. '그럽맨을 동정하느냐'는 CNN머니의 설문조사 결과 '동정할 가치가 없다'는 응답이 75%를 웃돈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주식시장이지만 자신보다 남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면서 '보고서'를 쓰는 인간적인 애널리스트들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