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말을 잘 들어라. 여객기가 납치됐다" "빌딩들이 보인다. 빌딩들이..." 뉴욕의 심장부인 세계무역센터(WTC)에 충돌, 세계를 경악케 했던 지난해 '9.11테러'에 이용된 여객기는 어쩌면 비극을 피할 수도 있었던 운명의 시간을 뒤로 한 채 최후의 순간을 향한 운항을 계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WTC에 충돌한 바로 그 여객기(아메리칸 항공소속 보잉 767기)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이 납치 당시의 상황은 물론 납치범들의 좌석 번호까지 지상의 항공사 직원들에게 비상 전화를 통해 상세하게 전달한 것이다. 미국의 ABC방송 인터넷판은 19일 납치된 항공기인 아메리칸 에어라인 11편의 승무원인 에미 스위니와 베티 옹이 충돌 직전, 지상에 있던 직원인 마이클 우드워드 등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먼저 13년차 베테랑 승무원인 스위니는 보스턴발 로스앤젤레스행 항공기내 전화를 통해 "내말을 잘 들어라. 나는 아메리칸 항공 11편에 타고 있다. 이 여객기는 납치됐다"고 알렸다. 조용한 목소리로 우드워드에게 전달한 이 통화는 테러사건이 일어난 후 연방수사국(FBI)이 범인들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4년차 승무원인 옹은 지상의 직원에게 납치범들의 좌석번호까지 알렸다. 이들의 통화를 종합하면 당시 긴박했던 순간이 재연된다. 여객기는 이날 오전 7시59분 81명의 승객과 11명의 승무원(기장과 1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보스턴 로간 공항을 이륙했다. 5명의 남자들은 여객기가 이륙한 지 몇분 후 그들의 좌석에서 일어나 조종실로 향했고, 곧바로 여객기를 장악했다. 스위니와 옹은 2등석에 있었다. 그들은 승무원 전화를 이용해 지상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위니는 로간 공항에 있던 직원인 우드워드에게, 그리고 옹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 있던 항공사의 좌석예약담당 직원인 바네사 민터에게 연결됐다. 우드워드는 당시 스위니가 "아주 조용하게, 빠르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스위니는 5명의 납치범 가운데 4명의 좌석 번호를 알려줘 지상의 직원들이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는 물론 예약 컴퓨터에 있던 신용카드 번호까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날 통보된 납치범 가운데 한명인 모하메드 아타는 후에 FBI가 9.11 테러를 저지른 19명의 범인 가운데 주도인물로 판명됐다. 스위니는 납치범들이 중동사람들로 보이며 노란 전선이 달린 폭탄을 들고 조종실로 쳐들어 갔다고 우드워드에게 말했다. 아울러 납치범들이 두명의 1등석 승무원인 바바라 아레스테그와 카렌 마틴을 칼로 찔렀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쪽에 앉아있어 납치범들이 조종실로 가는 도중에 마주친 최초의 승무원들로 보인다. 또 납치범들은 비지니스석 승객 한명의 목을 벴고,피가 낭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부상자들에게 산소를 흡입하도록 하는 한편 기내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는지를 묻는 등 긴급상황에 대처했다. 스위니는 2등석 승객들은 매우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으며 앞쪽 승객중 누가 아파 의료상으로 비상상황이 일어난 것 같다고 우드워드에게 전했다. 한편 옹의 전화를 받은 민터는 나이디아 곤살레스와 회의중이었다. 곤살레스는 보안 문제 등을 다루고 있었다. 민터와 곤살레스는 납치범들이 1등석에 뭔가를 뿌려 사람들을 조종실과 차단하려 했다고 옹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두 여자는 또 다른 승무원들이 앞뒤로 오가며 옹에게 정보를 전하는 것을 들었다. 곤잘레스는 "완전히 팀 플레이가 이뤄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옹은 납치범들이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옹의 통화중 첫번째 4분의 분량은 녹음이 됐지만 FBI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스위니의 통화내용은 녹화되지 않았지만 우드워드는 이를 적어놓아 후에 FBI의 수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위니의 '조용한' 통보가 없었다면 이 여객기가 WTC에 충돌한 뒤 아무도 알-카에다가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 수없었을 것이다. 이 두 승무원들이 긴급전화를 한 15분 뒤 비행기는 갑자기 비틀거리며 한 쪽을 쏠렸고 곧바로 수평을 되찾았다. 옹은 여객기가 수직으로 날았다고 전했고, 스위니는 '급강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들은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갔으며 이어 세계무역센터가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비행기 안은 조용했다. 우드워드는 스위니에게 창밖으로 뭐가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위니는 "물이 보인다. 빌딩들이 보인다. 빌딩들이..."라고 말했다. 옹은 "주여, 우리를 돌보소서"라고 기도했다고 곤살레스와 민터는 전했다. 우드워드는 "스위니가 여객기가 아주 낮게 날고 있다고 스위니가 말한 뒤 아주 느리고, 깊은 숨을 쉬더니 '오 마이 갓'이라고 침착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우드워드가 마지막으로 몇마디 말을 들은 뒤 고요한 정적만이 전화를 통해 전해졌다. 여전히 전화 수화기를 잡고 있던 사이 그는 다른 직원이 들어와 여객기가 방금 WTC에 충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