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색 립스틱 통으로 위장된 권총, 코트 단추 뒤에 숨겨진카메라, 실제로는 도청기인 나무 그루터기. 007 영화에나 등장했을 법하지만 실제로 전세계에서 활약한 스파이들이 사용했던 각종 장비들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이색 박물관이 문을 연다. 오는 19일 개관하는 미국 워싱턴의 국제스파이박물관 관계자들은 이 박물관이 스파이 관련 물품만을 전시하는 미국 유일의 박물관이며 국제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스파이박물관으로서는 세계 최초라고 지적했다. 국제스파이박물관은 모세가 12명의 이스라엘인들에게 신이 이스라엘에 약속한 가나안 땅을 정찰하라는 임무를 맡겼을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스파이의 역사를 보여주게 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나중에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는 조지 워싱턴 장군이 1777년 2월에 쓴 편지. 사상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워싱턴 장군은 뉴욕의 정치운동가이며 대륙군을 위한 군납업자였던 나새니얼 새킷에게 "적의 계획에 대해 가장 신속하고 가장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는 임무를 띠게 될 네트워크의 구축을 위해 월 5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박물관측은 최근 한 개인 수집가로부터 이 편지를 매입했다. 새킷의 후손들이 수년전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이 편지는 1931년 한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36년간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했던 피터 어니스트 국제스파이박물관 관장은 "스파이행위는 기록된 역사만큼이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아마도 그보다 더오래 됐을 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연방수사국(FBI)과 CIA를 이끌었던 윌리엄 웹스터와 옛소련 KGB 출신의 올레그 칼루긴 등 전직 스파이들도 이 박물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영국, 옛동독, 옛소련 등 전세계 곳곳에서 스파이 관련 물품들을 수집하는데 도움을 줬다. 다음은 주요 전시 품목. ▲립스틱 피스톨=60년대 중반에 처음 등장해 냉전 시대에 KGB 요원들이 사용. 4.5㎜ 구경의 일회 발사용 튜브로 일명 `죽음의 키스'. ▲단추구멍에 끼워진 카메라가 장착된 코트=70년대에 등장해 역시 KGB 요원들이 애용. 호주머니 속의 리모컨을 누르면 가짜 단추의 중앙부분이 열리면서 사진을 촬영. ▲그루터기형 도청기=70년대초 CIA가 개발.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하며 소련군사기지 근처의 숲속에 설치돼 비밀 군사 무선통신을 도청. ▲올드리치 에임스의 우편함=CIA 이중첩자로 소련에 기밀을 팔아넘겼던 올드리치 에임스가 소련측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분필로 표시해놓은 우편함.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007 시리즈의 `골드핑거'에서 제임스 본드가 탔던 은색스포츠카의 복제품. (워싱턴 AP=연합뉴스)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