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땅에서 산 것이 올해로 26년째지만 요즘처럼 일본인들의 태도가 달라진 적이 없습니다.부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뚜렷해졌어요."


도쿄 신주쿠에서 불고기식당을 하는 윤재훈씨(53).한국 축구가 스페인을 꺾고 4강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22일 저녁,그는 이 말만은 꼭 들려주고 싶었다며 기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예선리그를 통과했을 때만 해도 '축하한다'고 말하는 일본인 손님들의 표정에서 무언가 야릇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유럽 강호들을 연파하자 그들의 태도 자체가 확 바뀌더라고요."


수없이 많은 일본인 손님을 대하고 살아온 그는 한국축구가 이번 월드컵에서 신화를 일구어 낼 때마다 자신도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화가 계속될 때마다 일본인들의 찬사가 최상급으로 바뀌어 간 것은 물론이고 표정 또한 진지해져 갔다는 것이다.


한국축구의 쾌거가 안겨준 기분 좋은 경험은 윤씨만 맛본 게 아니다.


직장에서,학교에서,그리고 가정에서 교민들은 '보통 일본인'들로부터 축하인사와 칭찬을 받는 것이 일과처럼 돼버렸다.


한국 칭찬에는 일본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22일 밤 중계차까지 동원해가며 교민 밀집지역의 응원열기 취재경쟁에 나섰던 현지 방송과 신문들은 23일에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축구한국의 신화는 일본 땅 수십만 교민들에게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선물을 안겼다.한국인들의 강인한 정신을 '거칠다'고,정이 넘치는 따뜻한 행동을 '예절을 모른다'고 깎아내렸던 일본인들의 편견을 축구신화는 '용맹스러우면서도 정 많은 국민'의 인상으로 바꿔 놓았다.


축구장의 스탠드와 도시의 거리를 산처럼 메운 응원인파는 바위보다 더 단단하게 뭉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이번 월드컵이 남긴 것 중 하나는 한국과 일본의 확실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일본팬들이 지금도 한국팀을 성원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3일자 사설에서 한·일간 인연의 끈이 더욱 단단해졌다며 코리아 붐을 주저없이 월드컵의 최대 성과중 하나로 꼽았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