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가 미국의 석유 뉴프런티어로 떠올랐다. 수많은 미국 군인과 석유종사자들이 알렉산더 대왕이후 서방의 침입을 거의 받지 않은 '옛 소련의 복부(underbelly)'로 달려가고 있다. 그곳에 미국이 50년전 개입한 중동 이후 가장 큰 '미국 세력권'을 개척하기 위해서다. 이 거대한 모험은 향후 수십년 동안 미국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다국적 석유메이저들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반면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뉴프런티어 현황=프런티어는 흑해연안 그루지야에서부터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까지 걸쳐 있다. 미개발된 '자원의 보고'인 카스피해를 안고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1년전만 해도 이 지역에는 미군이 단 한명도 없었다. 9·11테러 이후 상황은 돌변했다. 현재는 약 4천명의 미군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는 군사기지를 건설중이다. 또 셰브론텍사코 엑슨모빌 BP 핼리버튼 등 다국적 에너지회사 관계자들이 각 정부를 대상으로 에너지원을 선점하기 위해 숨가쁜 투자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5년간 이 지역에 2백억달러를 투자했다. ◆'총'과 '석유'의 정치학=미국은 테러리즘을 압살하는 전진기지를 건설하고 이슬람근본주의 반군들로부터 각 정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군을 주둔시켰다. 그러나 '총'이 보호하려는 가장 중요한 대상은 석유자원과 송유관이다. 페르시아만 시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석유 및 가스 매장지로 꼽히고 있는 카스피해에는 2천억배럴의 원유와 6백조㎥의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총'이 향후 위력을 발휘할 대목은 석유메이저들이 수십억달러를 투자해 개발하고 있는 자원을 어디로 실어나를 것인가에 있다.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원하는 미국은 카스피해 자원을 운송하는 주요 루트가 '악의 축'인 이란을 통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미 정부는 일부 석유메이저들이 이란에 송유관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반대하고 있다. 그 대신 '카스피해-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터키-지중해'나 '카스피해-투르크-아프간-파키스탄-인도양'으로 통하는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곳곳에 도사리는 복병=미국의 영향력 확대는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과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전망이다. 이란은 자국의 몫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지난해에는 카스피해를 맴돌던 BP탐사선을 군함과 전투기를 동원해 내쫓기도 했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카스피해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군 진출을 자국에 대한 포위전략으로 간주하는 중국 정부와 러시아 강경주의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보다 큰 위협은 현지인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인들의 저항이다. 현재는 '테러와의 전쟁'을 외치는 미국의 위세와 경제원조 및 정권 안정을 바라는 각 정권의 무마책으로 잠잠한 상태다. 그러나 미군 주둔이 장기화되고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갈등이 표면화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 미국의 군사적 팽창은 결국 이 지역의 에너지원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제국주의 또는 신식민지주의적인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이 지역에서의 전략적 목표는 약탈이 아니라 경제발전과 민주 사회로의 이행을 도와 잠재적인 테러를 사전에 막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아제르바이잔의 한 주민은 "석유가 없었다면 미국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