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아르헨티나를 떠난다" 아르헨티나의 유력 일간 라 나시온은 20일 한인사회에 관한 특집기사에서 "한국인 2만명이 치안불안과 경기침체로 아르헨티나를 떠났다"며 "경제난으로 한인상점의60%가 이미 문을 닫았고 조만간 2천명이 더 떠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인회 간부와 교민 사업가, 한국공관 직원들과의 인터뷰 및 사진을 곁들여 한인들의 생활실태와 재이주 원인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한 뒤 "많은 한인들이 치안이 확보되고 경제전망도 더 나은 곳을 찾아 브라질과 멕시코, 미국, 캐나다 등으로 재이주했다"고 전했다. 라 나시온은 우익보수성향의 유력언론으로 전통적으로 중상류층에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다음은 라 나시온 특집기사의 요지. 3년전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한인 교민수는 3만5천명이었으나 오늘날에는 1만5천명을 넘지 못한다. 한인회와 한인상공인협회, 주아르헨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이미많은 한인들이 치안이 괜찮고 경제전망도 훨씬 나은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한인회가 최근 실시한 교민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2월말 현재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한인 숫자는 2,3세를 포함해 1만8천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이후 지금까지 3천명 이상이 더 떠났고, 앞으로 2천명 가량이 재이주할 것으로 분석됐다. 김기재 한인회장은 "(아르헨티나 이민생활은)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주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작년 12월 한달동안 70 가구의 한인가정이 강도피해를 겪을 정도로 많은 한인들이 치안불안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안전을 보장해주지않는다"고 지적했다. 한인이민 초기였던 1965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10여가구의 한인가정이 있었으나 투자이민의 물결을 거쳐 30년이 지난 1995년에는 3만5천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불경기로 접어들면서 1998년부터 재이주의 행렬이 시작됐다. 재이주자의 대부분은 이미 한인 이민사회가 형성된 곳, 즉 멕시코나 브라질, 미국, 캐나다 등을 선택하고 있고, 심지어는 모국으로 역이주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김 회장은 "아르헨티나에서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한인들)도더 참지 못하고 있다"며 "한인들은 가족단위로 일하기 때문에 일단 가게문을 닫으면가족 전체가 집단 재이주한다"고 말했다. 한국대사관의 박완수 홍보관도 최근 2년 동안 한인들의 재이주 행렬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들은 대부분 상인인데다 더 수요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인상공인협회 자료에 따르면 부에노스아이레스시내 바호 플로레스와 온세 지역의 한인상가 가운데 60%가 작년 한해 동안 극심한 불경기 때문에 문을 닫았다. 한인타운 인근의 카라보보와 카스타냐레스 거리에 남아있는 한인상점은 약 200개에 불과하고 미트레와 파소 상가지역의 한인상점은 약 400개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니엘 조 상공인협회장은 "경제위기에도 악착같이 버티는 지역은 450여개의 상점이 몰려있는 아베자네다 지역의 한인상가뿐"이라며 "이 지역의 한인상가는 극심한불황에도 불구하고 전체의 20% 가량만 문을 닫아 한인사회의 최후의 보루인 동시에마지막 노동현장으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위기 속에서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이 늘면서 상부상조의 정신이 발휘되고 있으나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않아 쉬쉬하고 있다"며 "그런 사실은 아주 가까운 친지나 가족 사이에서만 알려질 뿐 이웃조차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공인협회는 지난달 한인상점과 교회단체를 중심으로 불우이웃돕기운동을 벌였었다. 그 결과, 한국인의 주식인 600 의 쌀이 모아졌는데 "하루만에 그많은 쌀이바닥을 드러냈다"고 다니엘 조 회장은 말했다. 아베쟈네다 3100번지대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규태 씨는 "사람들은 (아베쟈네다 지역에서 장사하는) 우리를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 지역 한인상점들의 영수증 발급율이 최근 1년새 70% 가량 떨어졌다"며 "가게 외에는 다른 소득원이 없기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매일 가게문은 열어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주로 의류업에 종사하는 한인사회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약 1천개의 의류상점을 갖고 있다. 펠리페 바예세 1000번지대에서 의류상을 개업한 다니엘 리씨는 "요즘들어서는 먹거리 등 기본 생필품을 벌기 위해 일한다고 할 수 있다"며 "어렵게 구한 달러를 주고 팔 물건을 구입해 오지만 정작 부서진 기계 따위는 고칠 여력조차없다"고 말했다. 카라보보와 카스타냐레스 지역에서 봉제기계를 판매하는 마리아 김씨는 "친구들이 다 떠난 요즘 외로움을 느낀다"며 "30년전에 아르헨티나에 이민와 아들과 딸 낳고 살아왔지만 이제 더 희망이 없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 나이에 가게를 처분하고 어디에 가서 살 수 있단 말이냐"고 반문한 뒤"하루에 한두명 손님에, 그나마 사는 경우는 거의 없어 파리를 날리고 있지만 (경제난을) 참고 사는 수 밖에 다른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한숨지었다. 온세지역에서 모자점을 운영 중인 헤라르도 안씨는 "페소화 평가절하 이후 수입을 그만두었다"며 "점점 더 (경제위기를) 견디기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교회에 갈때마다 텅 빈 좌석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