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영화제에서는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역사와 투쟁, 오늘날의 비극을 그린 영화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16일 황금종려상 경쟁부문 시사회에 선보인 이스라엘 감독 아모스 지타이의 '케드마'(Kedma)를 시작으로, 역시 유대인의 역사적 고난을 그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팔레스타인 감독 엘리아 술레이만의 `신의 손길'(Divine Intervention), 또 다른 팔레스타인 감독 하니 아부-아사드의 `라나의 결혼:예루살렘, 또 하루' 등이 모두 이같은 범주에 속한다. `케드마'는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기 불과 며칠 전인 1948년 5월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 땅에 도착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처음 목격한 것은 그들의 상륙을 저지하는 영국 군인들과 이들을 아랍군대와의 싸움에 끌어 들이려는 유대인 지하 투사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를 피해 달아나는 팔레스타인인 등 혼란 그 자체이다. 영화는 아무런 도덕적 교훈도 내놓지 않으며 카메라는 느슨하게, 거의 임시변통된듯 혼란을 그대로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때로 동정적인 시각으로 그려지지만 초점은 `신세계'에 도착하는 유대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유럽에서의 경험으로 충격에 빠져있는 이들은 새로 도착한 땅도 그들이 그리던 천국은 아님을 곧장 깨닫게 된다. 지타이 감독은 이 영화를 이용해 혼란스럽던 당시의 역사로 가장돼 왔던 신화의 가면을 벗기려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을 보도하는 언론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타이는 "텔레비전 저녁 뉴스 등 매스컴이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기계적인 메시지이다. 어느날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다가 다음날은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똑같은 비난을 퍼붓는다. 역사는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24일 개봉되는 프랑스 감독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내에서 강제이송을 피해 달아나고 독일군 장교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재능있는 유대인 피아니스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른 작품들도 중동지역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 끝없이 이어지는 반목의 정체를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감독들의 영화는 두 편 모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야기된 억압적 상황에서 사랑을 지켜내려는 여성들의 힘겨운 투쟁을 그리고 있다. 20일 공개되는 엘리아 술레이만 감독의 `신의 손길'은 라말라에 사는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이스라엘군의 통행금지 조치로 동예루살렘에 사는 동족 애인을 만나지 못하게 되지만 온갖 수단을 동원해 상황을 돌파해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라나의 결혼'에서는 신랑후보 명단을 가지고 딸을 압박하는 아버지에게서 달아나지만 이스라엘군의 진입을 앞두고 10시간 안에 동예루살렘에 있는 애인을 찾아야 하는 팔레스타인 처녀를 그리고 있다. 한편 미국유대인위원회(AJC)는 16일 비슷한 이름의 다른 유대인 단체가 칸영화제 보이콧 운동을 펴고 있는데 대해 반대성명을 내고 프랑스를 방문하는 유대인들은 예배당을 찾고 유대계 프랑스인들과 접촉해 이들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라고 촉구했다. 프랑스에는 약70만명의 유대계 주민들이 유럽 최대의 유대계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나 지난 달 상반기중에만 300건이 넘는 유대인 배척행위가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00년 한해 전체의 반유대 행위는 200건이었다. 앞서 미국유대인회의 캘리포니아 지부는 프랑스내의 이같은 분위기에 항의, 할리우드의 유대계 배우 및 영화업계 유력자들에게 칸영화제를 보이콧할 것을 촉구했었다. (칸.뉴욕 AFP=연합뉴스) youngn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