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은 전대미문의 극우파 돌풍을 겪으면서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 대해 많은 검토 과제를 드러냈다.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가 몰고온 정치 대지진이 향후 개혁으로 이어져전화위복이 될 것인지, 개혁에 무능하고 혁명만을 선호한다는 프랑스인들의 일과성화풀이에 그칠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국민 고충에 귀를 막은 채 요지부동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정치권 수술이나 이해관계 대립을 낳기 마련인 경제 사회 제도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물론 세계를 충격속으로 몰아넣은 르펜 증후는 쓰디쓴 맛을 안겼으나아직까지는 봉쇄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프랑스가 개혁에 실패해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상실할 경우 이번 르펜 바람은 장차 더 큰 사회 폭발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이다. ▲정치제도 위기 : 프랑스는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적절히 조화시켜 유럽연합(EU) 안에서 민주주의의 모델로 통했다. 이민에 상대적으로 관대하고 이민자들의 주류사회 통합도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져 이민 분야에서도 모범으로 통했다. 그러나 경제성장 둔화, 실업 증대와 함께 어느새 이민사회는 범죄의 온상처럼취급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 쟁점이었던 치안, 실업, 이민 등은 서로 맞물려 있어 유기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은채 땜질 처방만 내놓았고 이는 르펜을 찍는 유권자 반란으로 이어졌다. 엘리트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에다 20-30년씩 정치권 붙박이로 살고있는 정치인들이 서민 고충은 외면한 채 공론만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무관심과 혐오를 낳았으며 극우파를 부상시키는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했다. 정치가 국민 중심으로 변하지 않으면 극우파 부상보다 더 큰 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극우파 실제 확인 : 르펜 당수는 프랑스가 경제호황을 누리던 90년대말만 해도 정치적 소멸의 길을 걷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에 고정표를 재확인한데다 지지율을 더 넓혔다. 1차투표에 나타난 표심을 분석한 결과 극우파는 저소득층, 실업자,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 북부, 동부 지역을 따라 실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민반대를 최우선시하고 있는 극우파가 단순한 인종주의가 아니라 빈곤, 실업등 현실 문제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는 이민 문제를 빈곤, 실업과 함께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좌파 재편 : 중도좌파와 극좌를 통틀어 좌파 정당들은 1차투표에서 4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해 좌파에 대한 지지율이 과거 선거 때보다 오히려 올랐다. 이는 좌파에 대한 국민 지지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범좌파 선거전략 부재가좌파의 패배를 몰고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때 주요 정파를 형성했던 공산당은 3%선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 그쳐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이번 좌파 패배는 프랑스 정치의 양대 축을 구성하고 있는 좌파, 특히 사회당에정체성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중도우파를 겨냥해 스스로 '사회적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공약을 내놓았다가 좌파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좌파는 구소련과 동구 공산권 붕괴, 자유주의 경제, 세계화 등의 신국제조류와사회 복지제도에 익숙한 유권자들 사이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이른바 '좌파 현대화'의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좌우동거(코아비타시옹) 재고 : 프랑스는 비효율적인 좌우동거정부를 피하기위해 지난 2000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대선과 총선의 순서를 바꿔 대선을 총선보다 먼저 실시하는 제도개혁을 단행했었다. 그러나 개헌 후 처음 실시한 이번 선거에서 또다시 좌우동거정부 가능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고있다. 이미 3번이나 등장했던 좌우동거는 반대 정파 출신들인 대통령과 총리가 외견상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경제자유화, 실업, 복지 등 중대개혁 앞에서는 두 지도자의 문제 접근 이념부터 틀려 좌우동거가 개혁의 걸림돌로작용했다. 영국식 의회주의와 미국식 대통령중심제를 혼합한 듯한 프랑스 정치체제는 권력을 좌, 우 한쪽에 몰아주기 싫어하는 유권자 경향이 뚜렷해진 현대에 맞지 않다는지적을 받고 있다. 정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원집정제식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뜯어고치는 개헌을 통해 제6공화국을 출범시켜야 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