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전 한 영국인의 꾐에 넘어가 런던과 파리를 떠돌며 신기한 전시품 처럼 취급된 뒤 사망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흑인소녀의유해가 3일 끝내 마침내 고향의 품에 안겼다. 남아공 국기로 덮여진 이 소녀의 유해를 담은 목관이 이날 정오 케이프타운에도착한 후 기념식이 열렸다. 소녀는 남아공 원주민인 호텐토트족 출신으로 `호텐토트 비너스'라 불린 사르티바트만. `호텐토트의 비너스'는 남아공 코이산 흑인들이 과거 영국과 네덜란드로부터 야만인 취급을 받았던 수모의 식민지 역사를 대변하고 인종차별주의를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그녀의 유해송환을 기리는 기념식은 장엄하게 진행됐다. 바트만의 출신 부족 추장인 안드리스 레플러는 기념식에서 "그녀가 고향땅에 돌아온 것을 자랑스럽게 환영하며, 그녀의 유해는 화해의 정신속에 안장될 것"이라고말했다. 1789년 출생한 바트만은 1810년 케이프타운에서 생활하던 중 한 영국인 의사에의해 런던으로 건너갔다. 바트만은 "외국인들에게 너의 몸을 보여주면 큰 돈을 벌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유럽으로 간 것으로 전해졌다. 바트만은 그러나 런던에서 우리에 갇혀 커다란 엉덩이와 성기를 드러낸 채 거리의 구경거리가 됐다. 이어 1814년부터 2년간 파리에서 인기리에 오락거리로 전시됐고 한때는 동물 조련사까지 팔리기도 했다. 바트만은 파리에 도착한 지 2년만에 숨졌으며 한 의사는 바트만의 시신에서 석고모형을 뜨고 뇌와 성기를 포름알데히드 병에 보관했다. 바트만의 유해는 1974년까지 파리의 인간박물관에 전시됐다. 지난 1994년 대선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되자 코이산 사람들은 `심리적인 식민지 탈피'와 `고통의 역사'에 종식을 고하는 의미로 바트만의 유해 송환을 요구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그해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남아공을 공식 방문했을 때 이 문제를 꺼냈다. 그리고 지난 2월 프랑스 의회가 바트만 유해를 두달안에 송환한다고 결정함으로써 기나긴 송환노력이 실현됐다. 정의와 화해를 위한 위원회 대표인 찰스 빌라 빈센티오는 "바트만 유행의 송환은 억눌린 과거의 나쁜 기억들을 지워버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한 민족을치료하는 중요한 의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트만 유해송환에 앞서 지난 2000년에는 스페인 박물관에 전시대있던 신원미상의 코이산 사냥꾼이 보츠나와에 반환한 적도 있었다. (케이프 타운 AP.AFP=연합뉴스)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