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10일간 중동 순방에서 벌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중재 노력이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끝났다. 중동사태에 대한 미국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관심을 끌었던파월장관의 중동순방 외교가 실패로 끝난 것은 미국의 외교력 부재는 물론 부시 행정부내 파월 장관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 파월 장관의 중동 파견을 발표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분쟁 당사자들에 대해 각각 즉각적인 병력철수와 테러공격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누구도 부시 대통령의 이런 요구에 귀를 전혀 기울이지 않은 꼴이 됐다.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공격은 계속됐고, 파월 장관 중동 도착 하루 전 예루살렘에서는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했다. 파월 장관도 순방을 마무리하는 예루살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평화중재 노력이군대철수와 테러공격 중단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파월 장관을 파견한 뒤 내내 침묵을 지키다가 지난 17일"파월 장관이 평화를 향한 진전을 이루어냈다"며 "그가 9일 간 수행한 임무에 매우만족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파월 장관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 보기는 어렵다. 미국측이 파월 장관의 순방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군대를 1주일 안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부터 철수하겠다고 밝힌 정도다. 일부 분석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파월 장관의 성과에 만족을 표한 것은 애초부터성공 가능성이 없는 임무를 자처한 파월 장관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파월 장관의 순방은 이스라엘측에는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반면 팔레스타인측에는 더욱 큰 분노와 좌절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고위 관리들은 중동 상황이 파월 장관의 방문 이전보다 더악화됐다며 분노를 표했으며 미국의 중재 노력 진의에 의혹을 눈초리를 보냈다. 이 분노의 이면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편향된 자세를 갖고 있다는 것과 파월장관이 강경파 일색의 부시 행정부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사에브 에라카트 팔레스타인 협상대표는 "파월 장관이 오기 1주일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말했으며 아라파트 수반의 고위 보안관리인 모하메드 다흘란 대령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평화 중재 노력에 대한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반응 모두 냉담하다.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우방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파월장관이 샤론 총리가 제안한 중동평화회의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휴전이나이스라엘군의 철수 없이 그런 회의를 여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텔아비브의 베긴-사다트전략연구소 정치분석가인 제럴드 슈타인버그는 "파월 장관이 어떤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시간만 낭비한 순방이었다"며 "파월 장관의 순방은 실수였으며 미국의 위신 실추"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앞으로 당분간 겉으로는 평화중재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파월 장관은 중동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고 팔레스타인의 한 고위 관리는 조지 테닛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일주일 안에 중동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외교 총수이자 대표적인 온건파인 파월 장관의 중동순방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것을 고려할 때 미국 정부의 중재노력이 큰 성과를 거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카이로=연합뉴스) 이기창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