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유력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2일 북한 이탈주민(탈북자)의 문제에 관해 상세히 보도했다. 이 신문은 1면 `칼럼 원(One)' 기사에서 탈북자 수가 지난 90년 9명에서 작년에는 2000년의 약 두배인 583명으로 늘어났으며 올들어서만도 88명이상에 달한다고 전했다. 신문은 관측통들의 말을 인용, 대규모 탈출 사태가 예상되지 않으나 많은 북한인들이 만성적인 식량사태와 극도의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탈북자 숫자가 올해 약 1천명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탈북자 김모(38)씨는 "북한 사회는 무너지고 있다. 식량부족으로 나이든 가족을 돌보는 오래된 미덕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18개월된 아들이 기아로 사망하자 작년 탈북한 김모(29.배우)씨는 "북한주민들은 자포자기상태다. 그들은 (북한에) 남으면 결국 죽을 것으로 느끼고 있다. 왜 (탈북)기회를 잡지 않겠느가"라고 탈북 이유를 밝혔다. 전우택 연세대 의대교수(정신과)는 북한의 식량난이 최고조에 달했던 97년이후 어느정도 개선됐지만 기아가 사회통제를 약화시킨 것도 북한인들의 탈출을 더 쉽게 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로 분석했다. 신문은 탈북자 증가추세가 남한 정부를 예민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있다면서 탈북자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인식될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북대화 노력도 손상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너무 많은 탈북자의 남한 입국은 가난한 북한이 언젠가 남한인들에게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의 원성마저 자아낼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반면 남한 정부는 성공적인 탈북자 정착 노력이 분단 50년이 지난 남북한 통일가능성을 위한 `총연습'(드레스 리허설)이 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남한 학자들은 탈북자 정착에 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신문은 밝혔다. LA 타임스는 그러나 남북한 통합이 독일의 값비싼 노력보다도 더 어려울 것이라며 통독전 서독인들은 동독인들보다 4배 정도 부유했지만 남한인과 북한인의 소득격차는 16대1에 달하며 남한의 작년 한해 음식쓰레기는 400만t으로 북한의 연간 주식소비량보다 많았다고 전했다. 신문은 북한인들이 지뢰가 매설된 비무장지대(DMZ) 등을 통해 남한으로 직접 탈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겨울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통해 중국으로 탈출하는 게 쉽다면서 현재 중국내 탈북자수가 10만-2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중국내 탈북자들이 적발될 경우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처형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체류하고 있으며 중국은 검거된 탈북자를 추방시키기로 북한과 조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베이징(北京)주재 남한대사관이 대중 외교관계 손상을 우려해 비자를 발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국내 탈북자의 극소수만이 남한에 올 수 있다면서 탈북자들은 몽골 등 제3국으로 가야 하며 남한 입국 과정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이뤄진다고 밝혔다. LA 타임스는 탈북자 단체 조사 및 남한 거주 탈북자들의 말을 인용, 탈북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편견을 이겨내야 하며 북한 생활과 현격한 차이가 있는 남한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전했다. 95년 탈북해 서울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이모(36)씨는 "탈북자들은 신생아와 같다"며 "그들은 북한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상호 북한이탈주민후원회 협력팀장은 "탈북자들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살았고 외부세계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그들은 은행계좌 개설법이나 운전법, 이동전화 사용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신문은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는 약 2천명으로 이중 일부는 북한 관련책을 쓰거나 사업을 통해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여전히 정착과 동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약 28%가 취업하지 못해 정부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탈북자 증가로 정착개시 정부지원금이 줄어 지금은 약 2만8천달러에 달하고 98년에 경기도 안성에 세워진 탈북자 정착지원시설 `하나원'에서 약 2개월 체류하면서 적응교육과 당국 조사를 받는다고 밝혔다. 하나원은 개원 당시 71명에 불과했으나 숫자가 늘어 정부가 확장 압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오연 특파원 coowon@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