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도 좀처럼 경제회복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서 과거 고도성장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한국전 특수 등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뒤 고도성장을 구가해 온 일본에서 요즘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대표주자는 만화 주인공인 '철완(鐵腕) 아토무(atom)'이다. 일본의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이번주 호에서 두손을 뻗쳐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의 `아토무'를 표지모델로 등장시키고, 일본 제조업의 미래를 진단하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또 국영 NHK 위성방송은 7일 밤 지난 1960년대초 텔레비전을 통해 첫 방영된 애니메이션 아토무의 제작과정 등 뒷얘기를 소개하는 3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탄생한 기계인간 아토무의 돌연한 `부활'은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아 옛날이여'라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NHK는 또 지난해 3월부터 방영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프로젝트 X, 도전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이달초부터 재방영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후지(富士)산 정상에 기상레이더를 세운 젊은 기술자들의 성공담으로 첫 전파를 탄 뒤, 스위스 시계의 명성에 도전한 세이코 시계 발명자들, 무학으로 어군탐지기를 만든 어부들, 도쿄타워를 건설한 집념의 젊은이들을 잇따라 등장시켰다. 언뜻보면 한국의 `성공시대'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이 프로그램은 세계 최고와 최초 등에 도전했던 과거 일본인들의 자화상을 통해 경제불황과 실업공포 속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역시 과거 화려했던 일본의 향수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일본에서 이처럼 `그 좋던 시절'을 회상하는 분위기는 지난해부터 뚜렷한 흐름을 형성해 왔다. 지난해 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선정한 히트상품 2위에 미국 메이저리그 시애틀 마리너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선정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수년간 수위타자 자리를 지키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데뷔,아메리칸 리그 시즌 최우수선수(MVP), 신인상, 도루왕, 최다안타 등의 영예를 통째로 거머쥔 이치로 선수에게서 일본인들은 과거 미국을 위협했던 고도성장기의 일본의 경제력을 반추했을지도 모른다. 또 1960년대 가요를 리메이크한 `내일은 있다(아시타가 아루사)'가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도쿄도지사를 지냈던 아오시마 유키오(靑島幸男)씨가 왕년에 연예계에서 활동할 당시 작곡한 이 노래는 "젊은 나에게는 꿈이 있다. 내일은 있다"는 등의 가사를 담아 샐러리맨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특파원 ksi@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