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즘, 50년전 미국 정가를 휩쓸었던 이 마녀사냥이 미국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가가 아닌 주식시장이 그 무대다. 증시에서 웬 매카시즘인가. 월가에 공산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진 않다. 뉴욕증시를 흔들고 있는 매카시즘은 정치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정치생명을 위협한 1950~54년의 그 매카시즘이 아니다. 이름하여 '금융 매카시즘(Financial McCarthyism)'. 정보의 최첨단에 서 있는 월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 신(新)마녀사냥은 21세기에 딱 어울린다. 지금은 경제가 최고의 덕목인 시대가 아닌가. 신 마녀사냥의 대상은 모든 상장회사들이고 부실회계 의혹이 있는 기업들이 그 제물이다. 지난 50년대 매카시즘의 원인 제공자는 동서냉전의 한 축이었던 공산진영이었다. 2차 세계대전후 중국의 공산화와 한반도에서의 6.25전쟁 등 공산세력이 급팽창하자 미국국민들은 공산주의를 두려워했다. 이때 상원의 비미(非美)활동위원회 위원장 조셉 레이먼드 매카시 의원이 공산주의자 추방운동을 벌였다. 50년 2월 "미 국무부에 2백5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발언으로 촉발된 반공산주의 선풍(매카시즘)은 애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4년간 공포에 떨게 했다. 반세기가 지난 2002년 2월의 금융매카시즘의 시발점은 부실회계 여파로 무너진 엔론.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찬사와 연매출 1천억달러를 자랑하던 미국 7위의 이 회사는 '정직'이란 단어를 무시했다가 붕괴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엔론의 파산으로 충격을 받은 투자자들은 기업들이 조금만 이상하게 움직여도 '부실회계 혐의'의 마녀꼬리를 갖다 붙인다. 기업인수합병으로 커온 회사, 공시를 번복하는 기업,결산실적 발표일정을 연기하는 업체들은 모두 분식결산 의혹의 그물에 걸려든다. 천하의 GE조차 그물에 걸릴 정도로 금융매카시즘은 광풍노도처럼 월가를 휩쓸고 있다. 신 마녀사냥의 그물에 걸린 기업들은 주가폭락과 신용등급 하락의 중상을 입고 신음중이다. 기업살생부와 다름 없는 금융매카시즘이다. 월가의 금융매카시즘은 세계를 향한 미국의 고통스런 고해성사다. 글로벌스탠더드라는 '주식회사 미국'도 썩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 leeho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