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파산한 미국 최대의 에너지 기업엔론의 정치권 로비를 둘러싸고 연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0일 엔론파산을 둘러싼 파문이 백악관으로 번지자 엔론의 파산과 정계로비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약속하고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등 사태진화에 나섰다. 부시 대통령은 레이회장과 만난 것은 작년 봄 텍사스주에서 열린 모친 바버라부시 여사의 도서관 재단 모금행사가 마지막이라고 밝히고 "레이회장과 엔론의 재정문제에 관해 논의한 적이 결코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도록 하기위해 엔론파산을 철저히 조사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부시는 "행정부는 이번 사태가 경제와 일반 시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파장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상무부와 재무부, 노동부 장관 등에게 파산기업에 투자한 개인예금을 보호할 수 있는 연금개혁 실무진을 구성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레이 회장이 작년 10월 폴 오닐 재무장관과 돈 에반스 상무장관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파산 가능성을 시사하고 에너지업계에 미칠 충격을 우려한 것으로 밝혔다. 그는 당시 레이 회장과 통화한 두 장관은 정부의 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레이회장과의 통화내용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법무부가 전날 엔론사건 전담반을 편성해 전국적인 수사에 착수한데 이어 노동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 의회내 여러 위원회가 엔론사태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법무부는 성명을 통해 지난 2000년 상원의원 선거 과정에서 엔론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은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데이비드 아이어스 법무장관 비서실장은 엔론 수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의 정치분석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엔론 사태와 무관하다며 적극 해명하는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으나 야당과 언론에서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어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기는 힘들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뜻밖의 중간선거 호재에 힘을 얻어 관련 위원회들의 청문회를 잇따라 소집하고 부시 행정부와 에너지 업계의 정경 유착 혐의가 드러났다며 정치 공세를 펴고 있으며, 엔론을 감리한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은 "상당한 양의" 엔론 관련 서류가 직원들에 의해 폐기되거나 누락됐다고 시인해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엔론은 진작부터 부시 가문의 자금줄로 알려져 왔으며, 레이회장은 2000년 대선에서 부시를 위해 10만달러 이상을 모금하고 작년 초 재계지도자 20명의 일원으로 백악관에서 열린 경제대책 회의에 참석한 바 있다. 레이 회장은 또 애슈크로프트 당시 상원의원이 이끄는 정치단체에 2만5천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딕 체니 부통령은 작년에 에너지 정책 입안과정에서 엔론사 임원과 6차례 만난 것을 시인했으나 재정상황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밝히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주당 85달러였던 엔론의 주가는 현재 1달러에도 못미치고 있으며 종업원들은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을 처분하지 못해 평생 모은 돈을 날리게 됐고 투자자들도 거액의 손실을 보았으나 경영진은 지난해 12월2일 파산 직전 주식을 대거 처분해 10억달러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