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과도행정부 구성에 관한 합의는 국제사회의갈채를 받았으나, "그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골치 아픈 질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5일 독일 본에서 서명된 협정은 유엔의 감시 아래 아프간이 탈레반 이후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를 갖추도록 돕기 위해 과도정부로 하여금 오는 22일부터집정(執政)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은행 금고는 비었고 자산은 빼앗기고없는 상태다. 탈레반이 지난달 카불에서 퇴각할 때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훔쳐가 중앙은행에 남은 외화가 14만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카불에 있는 군 병원을 관장하고 있던 탈레반들은 9대의 앰뷸런스 전부와 봉급을 주기 위해 마련해 두었던 돈을 몽땅 털어 달아났다. 이 병원의 한 의사는 자신이5개월 동안이나 봉급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구호업무 종사자는 "아프간에서 평화와 안정이 회복되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가 재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들을 하고 있으나 경찰과 장병들이 봉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프간 정파간회의가 과도정부를 구성하기로 원만하게 합의를 본 시간에 베를린에서 열린 아프간 원조 조정회의에 참석한 각 국제기구들은 아프간에 대해 최고 100억달러의 장기원조 방안을 의제로 올렸으나 구체적인 액수에 관한 논의는 거부했다. 지금까지 아프간에 대해 구체적인 원조 약속을 한 나라는 전혀 없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한 관계자는 "아프리카라도 된다면 프랑스라도 자국의 전식민지에서 안정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공공부분 건설에 필요한 경비를 대겠지만,아프간에는 그렇게 하려는 나라가 전혀 없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아프간인들에게는 오는 15일 이슬람 성월(聖月)인 라마단이 끝나는 것을 기념하는 `이드 알-피트르'를 앞두고 있어 지금의 식량난과 연료난에 새로운 어려움이 겹치게 된다. `이드 알-피트르' 때 아프간인들은 새옷과 선물을 사는 데 돈을 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카불 시민들은 구호요원들이나 외국기자들을 통하지 않으면 현금을 만져볼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아프간 재건이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은 물론 20여년 간의 내전과 기아, 자연재해로 많은 중요한 것을 잃은 아프간인들에게 존엄성을 되돌려 주는 일이기도 하다. 과도정부의 국방장관인 카심 파힘 장군은 수일 전 "만약 미국이 아프간 폭격에들인 돈의 절반 만이라도 우리에게 준다면, 우리는 부자 나라가 될 것"이라는 시사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6일 아프간 재건에 필요한 수백만달러의 `큰 덩어리'는 세계의나머지 국가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하스 아프간문제 특별조정관은 이날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미 행정부는아프간의 재건에 다른 나라를 배제하는 행위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프간재건 노력의 대부분을 미국이 맡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스 특별조정관은 이어, 대(對) 테러 전쟁의 제1단계에서는 미국이 탈레반을물리치고 오사마 빈 라덴에게 공격을 가함으로써 대부분의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그 다음의 책임은 다른 국가들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재건에 엄청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미국이 그몫을 다 하겠지만 아직은 그 액수를 밝힐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불 AFP=연합뉴스) d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