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북부 쿤두즈 인근의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폭동으로 탈레반 병사와 외국 자원병 등 수백명이 진압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 아프간전 개전 이후 최악의 인명 살상극이 벌어졌다. 특히 사망자의 대부분이 아프간 출신 병사가 아닌, 파키스탄과 체첸, 아랍 출신의 외국인 자원병으로 알려졌다. 당초부터 미국과 북부동맹이 외국자원병들의 신병처리 방법을 둘러싸고 난색을 표해왔던 터라 이번 사태의 원인과 전말을 두고 갖가지 의문이 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파키스탄의 이슬람 단체등이 이번 포로수용사 참사를 두고 미국이 치밀하게 계획한 학살극이라고 주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외국자원병의 상당수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추후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가혹한 응징을 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의 전말에 의혹의 시선이 더욱집중되는 형국이다. 북부동맹은 탈레반의 북부지역 거점인 쿤두즈를 함락시키는 과정에서 최근 사흘간 총 5천750명의 탈레반 병사가 투항했으며 이 가운데 750명의 외국인 용병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쿤두즈 함락이전 탈레반측과 북부동맹이 맺은 항복협정에 따라 투항한 탈레반병사들에 대해서는 사면조치가 취해졌으나, 외국자원병들의 경우 알 카에다 조직과의 관련성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마자르-이-샤리프 인근의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폭동이 발생한 곳은 바로 이곳 수용소였다. 따라서 사망한 포로들의 대부분이외국자원병들이며, 사망자 숫자도 애초 포로로 잡힌 외국계 병사의 수와 들어맞는다. 특히 폭동발생 현장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요원들이 있었으며 이 가운데 한명이 사망했다는 미확인 보도가 나옴으로써 CIA의 개입 여부도 관심을 끈다. 파키스탄의 이슬람근본주의 정당인 자마아트-이-이슬라미의 무나와르 하산 사무총장은 수백명의 외국 자원병이 포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이번 사태가 미국이 치밀하게 계획한 학살극이라고 주장했다. 하산 사무총장은 26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항복한 병사들이 다시 폭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서 미국과 북부동맹측이 포로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무장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어설픈 변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유엔과 모든 인권단체들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모두 침묵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파키스탄내 35개 이슬람단체 연합인 아프간수호위원회의 지도자인 하미드 울 하크는 페샤와르에서 열린 이슬람 성직자회의에서 이번 학살극을 비난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파키스탄 이슬람단체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어 계획된 학살극으로 단정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미국과 북부동맹이 탈레반 투항세력의 처리 문제를 놓고 보여준 태도를살펴보면 `골치아픈 포로들을 처리하기 위한 의도된 사건'이라는 의혹을 제기할만한몇가지 소지가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최근 "외국인 병사들에게 사면이나 출국의 기회를 줄 경우 다시 테러조직원으로 결집,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면서 빈 라덴에 충성하는 이들의 살해 또는 체포 외에 다른 방안은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테러가담 가능성이 있는 골치아픈 외국계 병사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또 북부동맹측도 아프간 출신 탈레반 병사들을 제외한 외국계 병사들에 대한 가혹한 응징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북부동맹 압둘 라시드 도스툼 사령관은 지난 22일 CNN 방송에서 외국인 자원병들을 체포, 아프간의 이슬람 법률에 따라 재판에 회부할 것이라면서 항복하지 않는병사들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북부동맹이 쿤두즈 공세 과정에서 외국계 자원병들을 무참히 학살할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외국자원병들은 고국에서조차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이유로 입국을 꺼리는상황이라 투항한다해도 갈 곳이 없다. 이를 반영한 듯,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아프간으로 싸우러간병사들은 본인들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서 다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했다. 특히 유엔의 입장도 주목된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대변인은 유엔이 아프간에서 포로의 처우문제를 감시.감독할 만한 인력도 시설도 능력도 없다면서 적극적인사태 개입에 난색을 표시했다. 다만 포로들을 제네바 협정에 따라 처우해야 한다는윈칙론만 강조했다. (카불=연합뉴스) 이기창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