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북부의 탈레반 마지막 거점인 쿤두즈에서 투항한 외국인 지원병 포로들이 25일 북부동맹의 수용소에서 유혈폭동을 일으켜 수백명이 사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북부 마자르-이-샤리프에서 서쪽으로 15㎞떨어진 칼라이 장히 요새에서 폭동이 시작된 것은 25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진흙 성벽으로 둘러싸인 19세기에 축조된 이 요새에는 전날 쿤드즈시에서 북부동맹군에 투항한 체첸과 파키스탄, 아랍국가 출신의 지원병들이 수용돼 있었다. 옷속에 무기들을 숨긴채 투항한 한 포로가 경비병들의 몸수색이 시작되자 수류탄을 폭파시켰고 다른 포로들이 가세해 경비병들로부터 칼리슈니코프 소총들을 탈취하고 무기고를 급습해 경비병들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여기서 수류탄 폭파범과 포로 2명과 함께 북부동맹군 간부 1명이 숨졌다. 북부동맹의 한 대변인은 포로들이 문을 부수고 탈주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살공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폭동이 시작되자 경비병 100여명은 요새의 성벽위에 올라가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했으며 양측의 총격전은 적어도 4시간이상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미군 특수부대원으로 추정되는 미군 병사들이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지원을 요청했고 이 요새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던 북부동맹 사령관 압둘 라시드 도스툼 장군 휘하의 지원 병력 500명과 탱크등이 증파돼 폭동진압에 나섰다.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원들도 폭동진압을 위해 투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과 북부동맹군의 무자비한 폭동진압작전이 전개되면서 총상을 당한 병사들이 몸을 절뚝거리며 요새밖으로 빠져나왔으나 이들이 포로들인지 아니면 경비병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요새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폭동발생 수시간후인 오후 6시 북부동맹측은 "포로들 대부분 사살됐으며 체포된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상황이 통제됐다고 말했으나 요새 주변에서는 저녁까지도 폭음소리가 이어졌다. 이 와중에서 미국인 1명이 숨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ABC 방송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숨진사람이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계약하에 일하고 있지만 정부관리는 아니라고 보도했다. 미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 논평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만일 보도내용이 사실일 경우 대 아프간 테러보복전이 시작된 이래 전투와 관련돼 미국인이 희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된다. 앞서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알렉스 페리 특파원은 미 공군 복장을 한 미국인 고문 2명이 요새안에 갇혔다가 이중 1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독일 ARD텔레비전 방송도 미군 특수부대원 1명이 요새안에 갇혀있는 장면을 촬영해 내보냈으며 이 보도에서 자기 이름을 데이비드라고 밝힌 미군 병사는 "요새안에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한명이 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병사는 미국의 공습이 이뤄지고 있는 폭동현장에서 위성전화를 이용, "최소한 수백명이 숨졌다"면서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1명이 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동현장에 자신과 함께 최소한 1명의 미군이 고립돼 있었다고 말했다. 폭동현장에는 또 로이터 통신기자와 국제적십자사 요원들도 고립돼 있었으나 총격이 뜸해진 틈을 타 성벽을 타고 필사의 탈출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폭동이 일어난 정확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북부동맹의 무자비한 대량 학살극이나 약식처형 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부동맹이 지난 9일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하면서 북부동맹의 학살극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백구의 시신 600구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 이 살해된 탈레반 병사들은 도스툼 장군 휘하로 투항했었다. 일부 북부동맹 사령관들은 투항한 탈레반 병사들은 사면하겠지만 외국인 지원병들은 재판정에 넘기기 보다는 죽여버리겠다고 공언했었다. 쿤드즈시 탈레반군의 투항협상에서는 외국인 지원병들을 포소수용소에 수용,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와의 관련여부를 심사키로 합의됐으나 쿤드즈시 점령을 놓고 북부동맹내에서 파벌간 다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외국인 전사들이 아프간을 벗어날 경우 또 다시 테러조직화될 우려가 있다며 이들의 석방에 반대해왔으며 이들을 법정에서 세우는 문제 역시 간단치 않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