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 주룽지(朱鎔基) 중국총리가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 중국과학원 학자, IT 관련부처 인사 등을 불러모았다. "초고속 통신망 구축 사업을 시작하라"라는 주 총리의 지시가 떨어졌다. 이에 따라 그 해 8월 초고속통신망 업체인 중국왕퉁(中國網通)이 설립됐다. 누구를 사장으로 영입할지가 문제였다. 많은 인사가 오르내렸다. 최종 낙점자는 당시 35세 사업가 톈쑤닝(田遡寧.37). 기라성 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국책사업을 맡게 된 이 청년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미국 텍사스대 박사출신인 톈 사장은 '해외 유학파' 벤처인. 80년대를 유학생활로 보내고 90년대 초 귀국한 그는 지난 94년 딩젠(丁健.36) 등 유학 친구 3명과 함께 창업한다. 통신 시스템통합(SI) 전문업체인 야신(亞信)과기가 그것. 통신분야 최초의 벤처업체였다. 이 회사는 설립 후 5년 동안 연평균 54.4%의 매출증가율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직수입'한 첨단기술이 이들의 무기였다. 이는 그가 '중국의 제3 국영 통신업체'로 불리는 중국왕퉁 사장으로 스카우트된 이유이기도 하다. "민영기업 야신에 있었더라면 돈은 많이 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필요로 했기에 미련 없이 야신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중국 전역에 '통신 대운하(大運河)'를 구축하는게 나의 꿈입니다" 톈 사장이 밝힌 전직의 이유다. 톈 사장은 중국 당국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작년 10월에 개통된 초고속통신망(CNC넷)은 지금 8천5백㎞, 동남부 17개 도시를 커버하고 있다. '통신 대운하'의 꿈이 익어가고 있다. 톈 사장은 지난해 미국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아시아 풍운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톈쑤닝이 떠난 야신과기.딩젠을 새 사령탑으로 한 야신과기는 중국 통신SI 시장의 최고 업체로 성장했다. 작년 3월 뉴욕 나스닥시장 등록에 성공, 국제적인 벤처기업으로 등장했다. 이에 힘입어 딩 사장은 6억7천만위안(1위안=약 1백55원)의 자산을 보유한 포브스지 선정 중국 제77위 재력가로 부상했다. 3명의 젊은 유학생들이 시작한 야신은 지금 직원 7백명, 매출액 1억7천6백만달러(2000년)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해외 유학 중국 유학생들이 귀국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등에서 활약하고 있던 중국 젊은이들의 귀국 대열이 눈에 띈다. 그들은 기술과 자금을 싸들고 돌아온다. 미국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겠다는 포부다. 이들이 중국 IT업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스닥 상장 통신 전문업체인 UT쓰다캉(斯達康)의 우잉 사장(吳鷹.41). 그 역시 80년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뒤 IT업체를 설립한 벤처인이다. 그는 지난 86년 비행기표와 30달러를 쥐고 '무작정'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뉴저지기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받던 그는 통신업체인 벨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진 기술에 눈을 뜨게 됐다. 벨연구소 아르바이트 4년 후인 지난 91년 그는 뉴저지에서 창업했다. 중국 IT시장 진출을 노리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지난 95년 중국 체신국이 발주한 무선접속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것. 지멘스 루슨트 3컴 등 세계적인 업체를 따돌린 쾌거였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UT쓰다캉은 사업 근거지를 중국으로 옮겼다. 작년 3월 나스닥 등록으로 우 사장의 자산가치는 8억 위안으로 늘어났다. "UT쓰다캉에는 미국유학 경력자가 1백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중국에 기술을 전하는 '기술 전도사'들입니다. 회사 업무의 99%가 중국관련이지요. 미국의 기술과 자금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중국의 시장을 발판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 사장의 회사 자랑이다. 그렇다고 중국 IT분야 벤처업계에 '해외 유학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대학 졸업생 중에서도 벤처업체를 창업,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퉈푸(托普)의 쑹루화 사장(宋如華.39). 쓰촨(四川) 우전대학 출신인 그는 홍콩과 상하이(上海) 증시에 퉈푸를 상장, 6억 위안의 자산을 보유하게 된 재력가이기도 하다. 그가 요즘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댔다. 대만 기업과 합작으로 6억위안을 투자, 청두(成都)과학단지에 핸드폰 PDA(개인휴대단말기) 노트북PC 등을 생산하는 종합IT업체를 세우고 있다. 퉈푸를 중국 서부지역의 IBM으로 키우겠다는게 그의 포부다. 젊은 벤처인들이 중국을 IT강국으로 만들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