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연쇄 테러를 겪고 난 뒤 인권유린행위인 고문에 대한 미국 언론의 입장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6일 전했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뉴스위크와 폭스 뉴스, CNN,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사회의 여론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언론사들이 최근 들어 고문에 대한 다소 이례적인 글들을 싣고 있다. 뉴스위크는 칼럼니스트인 조나단 앨터의 글 "고문을 생각할 때"를 통해 자유주의자들까지 고문의 필요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폭스 뉴스도 앵커인 셰퍼드 스미스를 통해 고문 허용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키려는 듯한 시도를 했다. CNN도 `크로스파이어' 프로그램을 통해 고문은 악한 것이지만 악을 제거하기 위해 악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정치평론가 터커 칼슨의 말을 방송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독자투고란에 필리핀 당국이 고문을 통해 얻어낸 정보로 많은 미국인의 생명을구했다는 역사학자 제이 위니크의 기고문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모두 고문이 허용돼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인 고문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시사했다는 점 자체가 이례적이며 테러에 경악한 미국 여론의 강경한 흐름을 대변하는 현상이다. 뉴스위크 칼럼니스트인 앨터는 자신의 글에 대한 수많은 항의 편지와 e-메일이 쇄도할 것으로 우려했다면서 그러나 우려했던 항의는 많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문에 대해 생각할 때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예상보다 많다는데 놀랐다고 말했다. 폭스 뉴스의 관계자도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용의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 지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이제까지 다른 나라에 대해 인권문제를 제기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섣불리 고문을 공개적으로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여론주도층이 고문의 필요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 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