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뇌출혈로 영국 런던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셰이크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사바 쿠웨이트 국왕(75)은 작은 석유부국 쿠웨이트를 24년간 통치했다.

셰이크 자베르 국왕은 내성적인 지도자로 알려졌으며 주로 석유 자원을 통해 최저 생존경제 상태에 있던 쿠웨이트를 시장자본주의로 이끈 주요 정치설계자들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28년 10대 국왕인 셰이크 아흐마드 알-자베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셰이크자베르 국왕은 지난 1977년 국왕에 오르기 전 전통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도 주의깊은 훈련을 쌓았으며 이것이 1980년대 초 경제 위기와 1991년 걸프전을 비롯 어려운 시기에 그가 진가를 발휘하는 원천이 됐다.

그는 청년시절 쿠웨이트의 여러 대학에서 코란과 아랍어 및 문학을 공부했으며영어도 배웠다. 21세 때 남부 항구도시 아흐마디의 보안책임자로 임명된 것을 계기로 정관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10년 뒤인 1959년 재무부 국장이 됐으며 장래 세대들을 위한 기금으로 국가 연간 수입의 10%를 배정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하는데 앞장 섰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3년 뒤인 1964년 재무석유장관과 무역산업장관에 임명됐으며 경제전문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했다.

1965년 11월 30일 사촌인 셰이크 사바 알-살렘 알-사바가 왕위에 오르면서 총리에 임명됐으며 1966년 왕세자로 지명됐다. 그리고 사촌 왕이 1977년 31일 사망함에따라 마침내 국왕에 올랐다.

1990년 8월2일 이라크가 돌연 침공함으로써 그의 통치 기간에 가장 어두운 시기가 닥처왔다.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7개월 간 점령했으며 이라크의 19번째 주로 병합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했으며 미국 주도의 국제 연합군이 이라크 군대를몰아낸 뒤에야 귀국했다.

셰이크 자베르 국왕은 항상 아랍 단결을 주창했으며 팔레스타인의 주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걸프전중 이라크를 지지함으로써 양측간에 불화가 발생했다.

그는 1985년 이슬람 지하드가 조정한 자살 자동차폭탄 암살 시도의 표적이 되기도 했는데 이란이 배후라고 공개적으로 의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2년 전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령을 제의했으나 의회에 의해 거부당했다.

(쿠웨이트시티 AFP=연합뉴스) hs@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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