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드디어 미국에 대한 테러사건을 계기로자위대의 '성역과 금기'를 허물고, 비록 후방지원이기는 하지만 태평양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투'에 참여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19일 미국의 테러 보복공격과 관련해 자위대 해외파병과 국내 미군기지 경비 강화 등 7개 항목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테러사건은 미국에 대한 공격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인류, 자유, 평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대의(大義)'를 강조함으로써 자위대파병이 불가피한 선택임을 부각시켰다. 결국 테러 보복공격에 대한 가시적인 도움을 요청한 미국의 '압박'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어 일본은 자연스럽게 자위대의 위상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발표의 핵심이 된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그간 일본 내부의 반대의견에 밀려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미묘한 사안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130억달러의 지원금을 내고, 전쟁 종결후 소해정을 파견하는 상징적 조치를 취했던 전례와 비교할 때 `파격적인' 조치로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특히 일본이 오는 27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처리를 계획하고 있는 미군 지원을 위한 새로운 법안과 자위대법 개정안은 자위대 파병을 겨냥해 그간 유지해 온 일본의 후방지원 개념을 손질했다. 일본은 이른바 `주변사태법'에 따라 `일본 주변의 공해와 상공'에서 유사사태가발생할 경우, 자위대가 미군을 후방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일본은 `주변사태'를 지리적 개념이 아닌 사태의 내용과 성격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내부적으로 한반도와 대만해협 일원을 주변사태의 범주로 상정해 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번에 미국이 테러 보복공격을 단행할 지역은 인도양의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점에서 일본은 후방지원의 개념을 뜯어고치는 `용기'를 주저하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후방지원의 개념은 종전 단순히 `일본 주변의 공해와 상공'에서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일본 영역과 공해, 상공'으로 변경, 개념을 크게 넓혔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번에 인도양 상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 함대가 전쟁에 돌입할 경우, 현행 주변사태법을 적용해 후방지원을 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다"며 주변사태 개념 수정의 배경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미군 지원을 위해 마련한법안초안에는 후방지원 활동으로 `무기, 탄약제공' `전투작전 행동을 위해 발진준비중인 항공기에 대한 급유와 정비'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기,탄약을 수송하겠다는 대목은 `무력행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점에서 야당은 물론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반대 등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은 이번 미국의 테러 보복공격에 동참하는 이유를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의 군사대국화와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해 온 주변국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줄 전망이다. 특히 일본이 자위대 파병이 중국과 북한을 자극, 동북아의 안보환경을 변화시킬가능성도 관측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특파원 ksi@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