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웅이 뉴욕 증시를 열었다"


뉴욕증시가 나흘간의 잠에서 깨어난 17일 오전 9시33분.


리처드 그라스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은 테러참사 현장에서 수백명의 동료를 잃은 뉴욕 소방대원과 경찰에게 개장을 알리는 타종을 맡기면서 그들을 '영웅'으로 불렀다.


참사현장에서 24시간 비지땀을 흘리는 구조대원들에게 보내는 뉴욕시민들의 박수는 뜨겁기만 하다.


테러범을 응징하기 위해 21세기 첫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무려 90%로 올라섰다.


전립선 암을 앓고 있으면서도 불철주야 붕괴현장을 지키고 있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도 가는 곳마다 환영 일색이다.


17일 오후 7시 워싱턴DC 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엔나 초등학교에서 열린 학부형 총회.


한달에 한번씩 만나 학교 재정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1분간의 엄숙한 묵념으로 희생자를 추모한뒤 토론이 시작됐다.


부모를 따라온 초등학생들은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그려진 셔츠를 입은 것은 물론 머리끈까지도 성조기를 상징하는 3색끈(빨강 파랑 하양)으로 만들어 달아맸다.


부모들 앞에 놓인 휴지조차도 성조기 무늬였다.


공연 전문 국립공원인 울프 트랩에서 16일 열린 세계어린이축제에서도 프로그램 중간 중간 묵념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이 끝날때마다 미국 국민의 애국심을 북돋우는 '미국을 축복하라'(God Bless America)는 찬가를 불렀다.


수십만장의 성조기를 사들인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세계무역센터 붕괴현장에도 수천t의 음식을 보내고 있다.


음식 외에도 구조장비와 혈액등 구조품들이 생존자 수색에 장애가 될 정도로 잔뜩 쌓여 있다.


조 로타 뉴욕 부시장이 "구조품은 제발 그만 보내 달라"고 사정할 정도다.


차가운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증권시장마저 감성적인 분위기를 탔다.


시스코시스템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과 증권회사들은 주가가 걷잡을수 없이 폭락할 경우 자기회사주식을 사 증시를 떠받치겠다고 밝혔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17일 하룻동안에는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언론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사고직후 테러공격이라는 제목의 특집방송을 하던 주요 TV방송사들은 '미국의 정신' '회복하는 미국' 등으로 타이틀을 일제히 바꿨다.


신문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주요 기업들의 광고가 연일 실리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이기주의적인 세태는 어쩔수 없었다.


육·해·공군 모병소에 입대를 문의하는 전화는 많았지만 실제 입대지원자는 진주만 공격때보다 훨씬 적었다.


하지만 최악의 폭락을 막아낸 투자자들의 애국적인 주식매입과 성조기를 품에 안은 국민들의 뜨거운 애국심으로 미국은 참사의 아픔을 서서히 이겨나가고 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