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국이 전세계에 공언한 테러 보복 전쟁을 놓고 현재 정치 외교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전쟁 선언에 대한 일본의 국내 반응과 입장도 그만큼 복잡 다단하다. 이번 사태는 미일 동맹 관계를 전후 일본 외교의 기축으로 삼아온 일본에게 전쟁 지지와 '공헌' 방법 등을 놓고 진정한 동맹 관계를 시험받는 중대 기로에 서게 만들었다. 특히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미국을 방문, 조지부시 대통령과 동맹관계 강화를 확인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 일본의 '전쟁 지원' 문제는 한마디로 미일 안보 정책의 근간을 가늠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현단계에서 일본이 안고 있는 딜레마와 국내 논란은 지난 91년 걸프 전쟁 때와 거의 비슷하게 재연되는 듯한 양상이다. 미국이 바라고 있는 '인적 공헌'을 통한 전쟁 참여는 헌법 등의 제약 때문에 "참여하고 싶어도 법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일본의 솔직한 혼네(속마음). 여기에는과거의 전쟁 기억 때문에 자위대 파병 등 무력 행사 자체에 거부 반응이 심한 일본국민의 정서와 국내 여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정부도 아직까지는 '헌법 범위내'의 미국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자민당 등 일부 정치권을 중심으로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하는 논의는 시간이 갈수록 불거지고 구체화돼 가고있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의 헌법 해석상 행사가 금지돼 있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대한 재검토를 위시해, 주일 미군이 테러 공격을 받았을 때 자위대의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자위대법 개정, 현재의 주변 사태법을 고치자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16일 들어서는 미군에 대한 후방 지원을 가능토록 하는 신법 제정론까지 제기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묘안'을 서둘러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일부 정치권에서 이처럼 법적 근거 찾기를 놓고 백화점식 `지혜'가 돌출하고 있는데는 걸프전 때와 같은 국제사회의 비난 만큼은 이번에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13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전비를 부담했으면서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었다. 물론 정치권의 이러한 움직임을 견제하는 목소리도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일부언론은 벌써부터 미국의 테러 보복 전쟁을 기화로 한 졸속적인 법개정과 안이한 법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도이 다카코 사민당 당수가 "보복은 더 큰 보복을 부른다. 전쟁이라면 일본은참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자민당 전간사장이 "지지와 지원은 별개"라며 미군 지원 반대론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도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일본 일각의 여론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도쿄=연합뉴스) 김용수특파원